준혁-세경, 정음-지훈 등 러브라인 중에서 조용히 빛나는 사랑이 있다. 풋풋하지도 긴장감이 있지도 않지만 평범해서 더 아름다운 광수(이광수 역)와 인나(유인나)의 관계가 그 것.
둘에게는 준혁과 세경의 긴장감도, 정음과 지훈의 풋풋함도, 순재와 자옥의 화려함도 없다. 가끔 ’찌질‘해 보이지만 88만원 세대의 아픔과 설렘을 담아낸 가장 현실적인 사랑이다.
◆ ’스펙‘ 따지지 않는 사랑
극중 광수의 소위 ’스펙‘은 형편없다. 남자 인물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다. 기업 총수 순재와 의사인 지훈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고 심지어 부잣집 아들인 고등학생 준혁보다도 별로다.
학벌, 재산, 직업, 외모 등 ’스펙‘을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비전 없는 백수인 광수는 드라마 인물로는 거의 등장한 적 없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남자다. 그러나 인나가 광수를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남자와 저울질하는 모습은 단 한번도 그려지지 않았다.
주머니 살림이 넉넉지 않아 초라한 셋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처지에서도 사랑을 키우는 광수-인나 커플은 보이는 것들로만 평가해 ’루저‘라고 낙인찍는 ’쇼윈도우 사회‘에 가장 진실한 사랑인 것이다.
◆ ‘밀고 당기기’ 없는 솔직함
또 하나, 광수-인나에게는 흔한 연애기술인 밀고 당기기가 없다. 연애 기술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비책이지만 둘의 굳건한 믿음 앞에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인나가 뮤직비디오에서 키스신을 하자 질투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광수의 모습은 지금껏 드라마에 등장한 여느 커플의 사랑보다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설정이었다.
광수와 인나의 관계는 엇갈리는 준혁, 세경, 지훈, 정음 등 4사람의 러브라인과 극명히 대조돼 더욱 빛난다. ’밀고 당기기‘가 필요 없는 신세대의 쿨 한 연애관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연인의 ‘꿈’ 배려하는 성숙함
둘의 사랑은 극 막바지에 꽃을 피웠다. 평범하고 심지어 ’찌질‘하지만 본질은 사랑이었다. 가수란 꿈을 이룬 인나와 먼 곳에서 연인을 바라보는 광수의 모습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TV에 출연한 인나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광수의 존재를 부정하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꾸자 광수의 상심은 커지는 가운데 둘은 기자회견장에서 영화 ’노팅힐‘처럼 멋진 재회를 한다.
“인나씨의 팬으로서 한 말씀드리겠다. 아무 걱정 없이 일본에서 꼭 성공하길 바란다.”고 응원메시지를 보내는 광수의 행동은 사랑하는 이의 ’꿈‘도 존중하는 성숙한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 감동을 선사했다.
의도치 않은 동거 설정과 수녀복 논란 등에 휘말리긴 했지만 광수와 인나의 사랑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평범한 젊은 이들의 아픔과 감정이 투영돼 있다.
’하이킥’의 김병욱PD가 이들의 사랑을 통해 보내려는 메시지는 “세상에 ‘루저’는 있지만 사랑에는 ‘루저’가 없다.”란 평범한 진리가 아니었을까.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