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군복 입은 것이 죄가 되는 나라

작성 2016.05.20 17:15 ㅣ 수정 2016.05.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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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의복을 입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 3만년 동안 만들어냈던 수많은 옷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옷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열에 아홉은 ‘군복’이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남성들에게 있어 군복은 심리적으로 특별한 영향을 발산하는 마력이 넘치는 옷이기 때문이다.

군복은 전투를 목적으로 특별히 디자인된 옷이지만, 우리나라의 군복은 전투에서의 효용성보다는 심리적인 파급 효과가 더 강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누구든 이 옷을 입으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시간대와 상관없이 배고프고 졸리게 된다. 특히 전역 후 이 옷을 입게 되면 모범생도 반항아가 되며 부대 정문을 나서는 순간 옷을 갈아입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든다. 도대체 군복 속의 그 무엇이 착용자를 이렇게 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군복이 부끄러운 이유

군복을 입으면 ‘불편’해지는 것은 의무 복무하는 병사들뿐만이 아니다. 직업으로 군인을 택한 간부들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국방부와 가까이 있는 용산역 2층 화장실에 가면 옷을 갈아입는 고급장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국방부나 합참에 출장 다녀가는 사람들이다. 부대 밖에서 업무 차 만나는 군인들도 예외 없이 사복을 입고 나오며, 심지어 사복을 입고 출퇴근하며 부대에서만 군복을 입는 간부들도 대단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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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 중 항의하는 주민 앞에서 고개 숙인 군인들.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가 여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병원에 찾아갈 때 종종 군복을 입고, 극중 군인인 등장인물들이 군복을 입고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 장병들로 하여금 이토록 군복을 불편한 옷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 원인은 바로 국민들이다.

국민의 절반이 남성이고 그들 중 상당수는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군인을 ‘군인’보다는 ‘군바리’라고 부른다. ‘군바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바리’라는 접미어에 ‘군’이 붙어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실제로도 이런 의미로 쓰이고 있다.

군인에 대한 비하와 경멸은 호칭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군인은 누군가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이자 자식이고 형제자매지만, 국가로부터 홀대받고 있고, 국민들로부터는 가장 만만한 대상이자 ‘봉’ 취급을 받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낮으로 훈련과 경계근무, 진지공사 등 각종 잡무에 동원되는 우리 병사들은 한 달 월급으로 병장 기준 19만 7100원을 받는다. 옛날에 비하면 많이 올랐다지만 이와 덩달아 물가도 올랐기 때문에 PX 가서 군것질 몇 번 하면 금세 빈털터리가 된다.

직업군인인 간부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9급 공무원의 초임연봉이 기본급과 수당을 포함해 2500만~2600만원 선인데 반해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하사는 기본급과 수당을 합쳐도 2200만원 선, 소위는 2500만 원 선이다. 최근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병영생활관과 달리 간부숙소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지금도 전후방 각 지역에서는 벽에 금이 가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숙소나 관사에서 거주하는 간부들도 많다.

국가만 군인을 이리 홀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도 군복 입은 자를 죄인 또는 ‘봉’으로 보고 있다.

최근 훈련 중인 해병대 병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주민들에게 붙잡혀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폭언을 듣는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군인들은 민간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출입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이 올라온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지난 2011년 양구에서는 주말 외박을 나온 병사들을 고등학생들이 집단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었다.

군부대 인근 주민들 역시 군인들을 ‘봉’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외출 또는 외박 군인들이 일정 시간 내에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 ‘위수지역’ 개념 때문에 멀리 나가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군인들에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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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훈련소 주변 불법 펜션의 군인 대상 폭리 영업 관련 보도.
사진=KBS 영상캡처


군부대가 많은 강원도 모 지역 소재 PC방들은 장병들이 외출·외박을 나오는 주말에 30% 이상 요금을 더 받고 있으며, 요금 논란이 제기되자 ‘주3회 이상 이용자’, ‘주중에만 가능한 회원 가입자 할인’ 등 장병들은 불가능한 할인제도를 도입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외박 장병들이 이용하는 숙박업소는 여인숙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시설을 갖춰놓고 주말 숙박비 8~10만원, 숙박인원 1인 추가 시 1만원 추가요금을 받아 분대 단위로 외출을 나오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객실 하나당 1박에 10~15만원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

최근 모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처럼 모 신병훈련소 인근 주민들은 6시간으로 제한된 영외면회제도를 악용, 온수도 나오지 않는 미신고 컨테이너 박스를 갖다놓고 6시간 대실료로 15만원을 받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바가지를 씌우며 장병들과 가족들을 울상 짓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부대 차원에서 위수지역을 좀 더 멀리까지 확대해주거나 부대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복지시설을 건립하겠다고 하면 주민들은 군이 지역 상권을 죽인다고 집단행동에 나서며 군을 곤혹스럽게 몰아간다.

장병들을 괴롭히는 것은 상인들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군부대가 시골에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나 유관단체로부터 끊임없이 대민지원 요구가 들어온다. 대민지원의 형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농번기에 모내기나 추수를 돕거나 폭우·폭설이 내렸을 때 복구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농사일부터 시설보수, 심지어 과외 선생님 업무까지 다양해졌다. 병력 감축으로 인해 항상 일손이 부족한 부대 입장에서 대민지원을 내보내는 것은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고, 장병들 역시 훈련과 업무를 하면서 휴식을 쪼개 대민지원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군인들이 자신들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때때로 더 많은 일손을 요구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군복을 입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등병부터 장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가 된다는 의미한다. 장병들은 불합리한 일을 당하더라도 군복을 입었기 때문에 침묵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 누가 군복을 입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군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선진국, 이른바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군인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국민들이 많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인은 비하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우대의 대상이다. 선진국 국민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안팎의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군인을 존경하고 감사를 표하며 그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제공한다.


우선 급여 체계가 일반 공무원들과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군의 하사나 소위의 연봉이 2200만~2500만원 수준인 것과 달리 미군은 갓 입대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이등병(Private E1) 기준 기본급만 1만8802달러(약 22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식비(연 2000~2400달러), 주택수당, 의류수당이 더해지고, 해외 파병, 군함 또는 항공기에 타는 병사들은 직종에 따라 월 70~1000달러의 추가 수당이 더해지기 때문에 해외 파병 근무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이등병이라 할지라도 실제 연봉이 우리 돈으로 따지면 3000만~4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급여에서만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과 직계가족은 무료로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면 복무기간 중 연간 4500달러(약 526만원) 안팎의 학비가 지원되며, 전역 후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면 최대 8만3000달러(약 9700만원)을 지급받는다. 결혼한 병사에게는 주택 구입비용 또는 임대비용과 가족에 대한 식비가 지원되며, 거의 모든 생필품과 가전제품, 차량 등을 면세 혜택으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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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볼 경기장에서 기립박수 받는 미군장병.
사진=미 공군


임무 수행 중 전사한 장병의 가족에게는 각종 기금과 보상금을 합쳐 약 100만 달러(약 11억 7000만원)이 지급되며, 사망 후 6개월 간 주택 및 주택비용을 제공하고, 1년 간 군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과 더불어 평생 계급에 따른 연금이 지급된다.

군복을 입은 사람을 예우하는 것은 국가만이 아니다. 선진국에서 군인은 존경과 예우의 대상이며, 시민들이 군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령, 군복을 입고 식당에 가면 식사비용을 대신 계산하는 사람이나 음식 값을 아예 받지 않는 식당 주인도 종종 찾아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감사인사 세례를 받기 일쑤다. 극장이나 운동경기장에 훈장을 받은 군인이라도 나타나면 행사를 시작하기 전 기립박수를 받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가는 군인에게 항재전장(恒在戰場), 즉 언제나 전쟁터 한 가운데에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강조하며 군복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는 군인을 위한 수의(壽衣)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군복에 부여하는 의미는 수의(壽衣)가 아니라 수의(囚衣), 즉 죄수복에 가깝다.

군복이라는 수의를 입은 청년들은 최저시급의 1/10도 안 되는 봉급과 수용소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국민과 사회로부터 군바리라는 조롱과 호구 대접을 받으면서 2년을 버텨야 한다. 이를 거부한 청년들은 죄수복이라는 수의(囚衣)를 입고 옥살이를 한 뒤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죄수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군인도 군복 입은 자이기 이전에 시민이고 사람이다. 군복 입은 자를 비하하고 손가락질하며 푸대접하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앞날을 내던져 희생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의인(義人)이라 칭송하면서 목숨과 청춘을 바쳐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에게는 왜 이러한 인식과 처우가 주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이일우 군사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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