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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정의 TECH+] 30년 앙숙 ARM과 손잡은 인텔의 속사정은?

작성 2016.08.19 10:28 ㅣ 수정 2016.08.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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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포토리아


2016년 인텔 개발자 회의(IDF) 직후 평소와는 상당히 다른 발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통 과거에는 인텔의 새로운 미세 공정이나 새로운 CPU, 새로운 칩셋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IDF는 몇 년 전부터 강조해온 사물 인터넷은 물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합친 융합 현실(MR), 차세대 메모리인 3D 크로스포인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놀라웠던 부분은 ARM의 제휴를 선언한 점입니다. 최근 몇 년간 ARM과 경쟁을 벌였던 인텔의 전략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적과 동지를 반복한 ARM과 인텔

ARM의 기원은 80년대 '영국의 애플'로 불린 아콘 컴퓨터입니다. 아콘 컴퓨터는 자체적인 CPU와 운영체제를 지닌 영국 토종 업체였는데, 미국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에 시장 점유율을 잃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이들이 인텔의 x86 CPU에 대항할 작고 효율적인 RISC 프로세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ARM 프로세서의 시작입니다. 초기 ARM 프로세서는 창조주인 아콘 컴퓨터의 기대만큼 작고 효율적이었으나 시장의 흐름은 x86 기반 CPU로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결국, 아콘 컴퓨터는 ARM을 독립시킨 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ARM은 시작부터 인텔과는 악연이었던 셈입니다.

독립한 초기 ARM은 매우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직접 CPU를 만드는 대신 라이센스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 나갔습니다. 다행히 ARM 프로세서는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해 셋탑 박스는 물론 휴대폰, PDA 등 모바일 기기에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PDA 같이 고성능 모바일 기기의 수요가 증가하자 인텔이 ARM과 손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인텔이 만들던 x86 CPU는 PDA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크고 전력소모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인텔은 ARM 기반의 PDA 프로세서를 만들었는데 Xscale 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PDA나 초기 스마트폰을 다뤄봤던 분이라면 혹시 기억하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ARM 기반 모바일 프로세서는 사실 인텔이 제조했습니다.


그런데 ARM 기반 모바일 프로세서는 인텔만 제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ARM이 여기 저기 라이센스를 빌려줬기 때문에 돈만 내면 누구나 프로세서를 제작할 수 있었죠. 인텔은 2006년 ARM 관련 모바일 프로세서 부분을 매각해버립니다. 왜냐하면, 당시 인텔이 아톰이라는 매우 작고 효율적인 x86 프로세서를 제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ARM 프로세서 대신 인텔이 자신 있는 x86 프로세서 기반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더 적합한 사업 모델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폰 쇼크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고성능 ARM 프로세서 위주로 재편되면서 인텔은 적절한 시장 진입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삼성,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 ARM 기반의 스마트폰 프로세서 제조업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강력한 성능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내놨고 iOS나 안드로이드 모두 여기에 최적화된 OS가 되면서 인텔이 들어갈 자리가 매우 좁아진 것입니다.

인텔은 x86 기반의 안드로이드 OS를 지원하면서 반전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서 모바일 대전은 ARM 진영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시 ARM 기반 프로세서를 제조하는 인텔

오히려 이렇게 되면 ARM과 인텔의 경쟁 관계는 다시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텔은 ARM 기반 프로세서 생산을 새로운 수익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텔의 전통적인 시장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죠. PC 시장은 몇 년째 마이너스 성장 중이고 그에 따라 이 부분에서 인텔의 매출은 조금씩 감소 중입니다. 다행한 일은 서버 및 데이터 센터 부분의 매출이 계속 증가해 이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매출과 수익이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IDF 2016에서 인텔이 융합 현실이나 사물인터넷 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도체 및 프로세서 업계 1위인 공룡 인텔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추가해서 새로운 성장 분야로 보는 것이 바로 반도체 위탁생산 (파운드리)입니다. 과거 인텔은 자신의 생산 시설에서 자사의 CPU와 기타 제품만을 제조했으나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비용이 급증하는 데다 PC 시장의 침체로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이를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회사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것이죠. 이미 인텔은 14nm 공정도 ARM 기반 프로세서를 위탁 생산했으니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IDF에서 인텔이 ARM을 새로운 파트너로 소개한 부분은 새로운 놀라움입니다. 이는 인텔이 다시 ARM과 협력해 관련 업체들의 프로세서를 위탁생산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죠. 일단 10nm 공정에서 새로 생산할 제품은 LG가 만들 프로세서라고 하는데, 물론 파운드리 사업의 특성상 더 많은 고객을 원할 것입니다. ARM과의 협업은 ARM 기반의 프로세서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산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것은 기업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인텔과 ARM 같은 독특한 관계는 쉽게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두 회사가 협력해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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