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정말 외롭습니다. SOS - 제주 이중섭 미술관

작성 2017.08.17 09:06 ㅣ 수정 2017.08.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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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경에 제작된 작품 ‘흰소. 당시 우리 민족의 헐벗은 모습과 더불어 살아 있는 민족 정기를 담아내고 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외로웠다. 죽을 때까지 혼자였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외롭게 죽을 운명이라고 낙담하였던 세계적인 조각가 쟈코메티(1901-1966)보다도 더 빨리, 더 고독하게 죽었다.

그가 서귀포 구석진 바람벽, 휘뚜루마뚜루 써 놓았던 시(詩), ‘소의 말’에서도 삶은 그에게 이미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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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미술관 입구에 서 있는 소를 형상화한 조각. 이중섭의 유일한 시 ‘소의 말’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의 전화(戰禍)를 피해 원산에서 내려온 그의 가족들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제주도 서귀포의 무너진 돌담집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이 곳에서 한라산의 성근 부추를 뜯고, 해초(海草)나 게를 잡아먹는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두 아들, 아내와 함께하는 모처럼의 단란한 시간도 누린다. 서귀포 생활은 그늘진 그의 운명이 허락한 마지막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그는 몰랐으리라.

제주 이중섭 미술관이다. 이제서야 그의 삶은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들 한국의 반 고흐, <소>그림에 빠져버린 민족화가, 온갖 기행을 일삼던 경제관념 없던 미치광이 화가,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던 은지화(銀紙畵)의 선구자 등등 그를 수식하는 용어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로운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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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의 서귀포 날씨는 뜨겁다 못해 살이 데일 듯 하다. 이중섭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런 여름 더위를 피하게 해준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그는, 아버지는 없었으나 어머니, 형, 누이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부유하게 성장한다. 이후 3.1운동 당시 33인의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인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진학하면서 그의 삶은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당시 오산학교는 홍명희, 조만식, 김억, 염상섭 등과 같은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이끌어가던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명문 학교였다.

더구나 미국 예일 대학에서 수학했던 화가 임용련(任用璉. 1901~ ? )이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1930년대의 서구 미술의 주류 중 하나였던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수업이 이중섭에게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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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관람객들이 이중섭 미술관을 방문하여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다. 특히 은지화의 원본이 있어 미술관 관람이 유익하다


오산학교 졸업과 일본 유학생활 이후, 그의 그림은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야수파적인 매우 강렬한 색채와 선묘 위주의 특이한 조형 감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비록 감각은 서구적이었으나 소재는 민족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는데 주로 소, 닭, 어린이, 게, 가족 등의 일상적인 그림을 서정성을 지닌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타내었다.

그의 대표작인 <소>, <흰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바다가 보이는 풍경> 등은 이렇듯 서구적인 조형성에 한민족 삶의 원형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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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생활은 이중섭에게 가족과의 단란함을 느끼게 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작품명은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다


이중섭의 삶은 한국전쟁의 참화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였다. 그를 아끼며 든든한 경제적, 정서적 후원자였던 어머니와 형, 누이를 고향에 남겨두어야 했다. 또한 ‘아고리’라는 애칭으로 그를 각별히 사랑했던 아내 마사코(山本方)와 두 아들마저 생활고로 인해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그는 부산과 통영의 부두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담배곽에 싸여 있던 은박지를 뜯어 그림을 그려야만 했고, 늘 일본의 가족을 그리워했다. 1955년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게 되었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후 그는 대구 성 누가 정신병원을 거쳐 1956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간장염으로 만 40세에 쓸쓸히 숨을 거둔다.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처음부터 밀린 병원비 독촉장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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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미술관 바로 앞길에는 이렇듯 벼룩시장이 열려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나는 정말 외롭습니다. SOS...SOS...SOS...언제나 건강하고, 다정한 당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기쁘기 그지없겠습니다.....“

<제주 이중섭 미술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제주도 서귀포 일정이 하루 정도 여유가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 (064-760-3567)

4. 감탄하는 점은?

- 이중섭 미술관 주변의 벼룩시장.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미술관 규모로서는 아담한 편. 레플리카(복제화) 외에도 좀 더 많은 진품이 소장되기를

6. 꼭 봐야할 그림은?


- 황소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 약 1 시간 정도.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culture.seogwipo.go.kr/jsle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제주 올레 6코스, 쇠소깍, 천지연폭포, 외돌개, 소암기념관, 서귀포시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이중섭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 미술관 주변 거리의 벼룩시장이 볼만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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