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그로스먼 박사는 과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헬멧이 깨질 정도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의식을 잃었다. 이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몸을 일으킬 수 없고 복부 밑으로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최근 미국 NBC뉴스 등 외신은 세상 누구보다 환자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사 대니얼 그로스먼 박사를 소개했다.
2016년 9월 그로스먼 박사는 위와 같은 사고로 인근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살피던 그가 응급실에 환자로 입원한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처음에 그는 곧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부상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그는 허리와 배에 있는 척추가 골절된 것으로 확인돼 곧바로 긴급 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부상을 되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담당의에게 “이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함께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뒤에도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다치자 내 곁에 머물며 날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곁에 머물며 당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인 론 가버는 그로스먼이 다친 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버는 “그로스먼이 처음 내게 한 말은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자신을 탓하지 마’였다”면서 “그 순간에도 그는 날 생각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로스먼 박사는 4개월 반 동안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세 곳의 다른 병원에 머물렀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내리는 법을 배웠고 혼자 샤워하고 옷을 입고 운전하는 등 여러 일상적인 일에 적응해나갔다.
또 그는 혼자서 설거지할 수 있도록 집안 싱크대를 낮추고 조명등을 작동하기 위해 AI 스피커를 설치하는 등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내부를 개조했다.
하지만 그는 바뀐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응급실 의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6개월 이내 복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붙기 시작했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상의 상황에서 응급실 안을 돌아다니며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연습을 했다.
그는 “우리는 마네킹을 마련해서 기도삽관과 중심정맥관, 그리고 요추천자 등을 연습했다”면서 “메이요 응급실에 환자실을 설치해 모의 환자들(대개 친구의 아이들)을 데리고 응급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해서 그는 6개월 만에 미국 미네소타주(州)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의 응급실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다시 일하게 된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면서 “예전처럼 능력이 출중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환자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의사가 되는 법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195㎝의 장신인 그로스먼 박사는 과거 종종 환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제 그는 말 그대로 환자들 눈높이에서 말할 수 있다. 그는 “난 그들의 손을 잡으며 대화가 훨씬 더 친밀해졌다”면서 “환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러 취미 생활을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비록 팔로 움직여야 하는 핸드사이클이지만 그는 예전처럼 친구 가버와 함께 쉬는 날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NBC 뉴스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