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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해 쇠똥구리야’…대변으로 변장하는 열매

작성 2015.10.07 17:09 ㅣ 수정 2015.10.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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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식물들은 향긋하고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 동물로 하여금 이를 섭취한 뒤 여러 장소에서 씨앗을 배설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스스로 멀리 이동하지 못하는 식물들이 최대한 넓은 범위에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취하는 방편 중 하나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로 동물 대변과 같은 지독한 악취를 가진 열매를 가진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학교 제레미 미질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로도코마 카펜시스(Rhodocoma capensis) 혹은 케이프 레스티오(Cape Restio)라고 불리는 식물 열매의 독특한 특성을 다룬 논문을 최근 네이처 플랜츠(Nature Plants) 저널에 공개했다.

이 식물은 영양의 똥과 비슷한 크기의 단단하고 둥근 견과류 열매를 만든다. 이 열매는 톡 쏘는 악취를 풍기는데, 연구팀은 이 냄새로 인해 열매를 동물 대변으로 착각한 쇠똥구리들이 열매를 멀리 운반해가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열매는 공기 중에 빠르게 확산되는 휘발성 강한 화학물질을 분비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휘발성이 더욱 강한 물질을 내뿜는다. 미질리 교수는 “(이 열매에서는) 인간도 쉽게 맡을 수 있는 톡 쏘는 냄새가 난다”며 “개인 사무실에 열매를 9개월 째 보관 중인데 여전히 강한 냄새가 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해당 열매 195개를 남아공 케이프타운 지역 남쪽에 있는 ‘드후프 자연보호구역’(De Hoop Nature Reserve) 곳곳에 흩뿌려놓은 뒤, 동작 감지 카메라 등을 설치해 동물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불과 24시간 만에 쇠똥구리들이 이 중 절반 이상을 굴려 가져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쇠똥구리들은 동물의 똥 이외에 다른 음식은 먹지 않으며, 대변들을 공 형태로 모아 굴려서 서식지 주변 땅 속에 묻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쇠똥구리들은 이렇게 보관한 대변 덩어리를 나중에 섭취하거나 그 안에 유충을 낳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쇠똥구리나 그 유충은 케이프 레스티오의 열매를 전혀 먹을 수 없다. 땅에 묻힌 열매는 따라서 쇠똥구리에게 섭취당하는 대신 뿌리를 뻗고 줄기를 내게 되는 것.

더불어 연구팀은 일부 소형 포유류들의 경우 이 열매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아예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포유류들은 열매의 겉껍질이 벗겨지고 나서야 내부의 씨앗을 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추후 이 열매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들을 분석, 그 중 쇠똥구리를 유인하는 성분과 포유류를 쫓아내는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상세히 알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제레미 미질리/네이처 플랜츠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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