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은 선수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준결승 전에서 석연치 않는 심판판정으로 결승행이 좌절됐던 경험이 있는 그이기에 모자 안쪽 챙에 새겨진 ‘금메달’ 란 세 글자의 의미가 남달라 보인다.
그동안 이승엽이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활약은 참으로 대단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는 그의 능력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국민타자’ 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그의 지난 활약을 되돌아 보자.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예선 (17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176)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8타수 5안타 1홈런 7타점 .179)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6타수 11안타 0홈런 6타점 .423)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예선 (11타수 3안타 0홈런 3타점 .273)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4 타수 8안타 5홈런 10타점 .333)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 (23타수 11안타 2홈런 12타점 .478)
첫 국제대회 참가였던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에서 이승엽은 대체로 부진한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당시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이승엽이 홈런을 쳐내며 연장접전 끝에 한국은 5-4로 승리한다. 2-2 동점 상황에서 터진 6회초 리드홈런은 연장전 승리의 시발점이었다.
이듬해 열린 시드니 올림픽 본선에서 이승엽은 답답할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일본과의 2경기(예선전, 3-4위 결정전)에서 일본의 에이스인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해결사 본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첫 대결 예선전에서는 2점홈런을 뽑아내며 한국의 7-6 승리의 디딤돌 역할을 했음은 물론 동메달이 걸려있던 3-4위 결정전에서는 다시 마쓰자카와 상대해 이전 3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했지만 8회에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한국야구가 올림픽 사상 최초의 메달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에서 이승엽은 비록 홈런은 쏘아올리지 못했지만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고른 활약을 펼치며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있어 중심타자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다.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은 치욕스러운 악몽을 경험하는데 일본은 물론 대만에게 까지 패하는 수모를 당하며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된다. 이승엽 역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더욱 아쉬운 대회였다. 한국야구 위기론이 무섭게 대두됐던 당시의 예선탈락은 팬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2006년 요미우리로 이적, 시즌 전 참가했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전세계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그의 활약에 한국은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음은 물론 5개의 홈런과 10타점을 기록하며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에 수상하게 된다. 미국의 본토 땅에서 이룩한 성적이라 그 기쁨이 배가 됐음은 물론이다.
올시즌 시작전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전에 참가한 이승엽은 그명성 그대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다.
상대투수들이 던질 곳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기량을 선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최종예선 참가가 올시즌 이승엽의 성적을 결정해 버린 아쉬운 대회가 되고 말았다. 손가락 수술이후 재활 훈련에 몰두하지 못하고 참가한 대회였기에 바뀐 타격폼 적응만큼이나 시즌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2군 생활을 끝마치고 올림픽 기간동안 1군에서의 활약이 보장됐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한번 대표팀 일원이 됐다. 많은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다.
최근 몇년간 한국야구의 국제대회 성적은 이승엽의 활약에 따라 좌우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 역시 한국의 메달 색깔을 결정할 타선의 핵은 이승엽이다. 그가 터지면 중심타선의 김동주-이대호 역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수 있음은 물론 대표팀 타선의 전반적인 분위기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보다 이승엽 본인이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다. 대표팀의 선전과 이승엽의 해결사 본능을 기대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