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모델이라는 직업을 단순히 자동차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8등신 미녀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구지성이란 이름 세 글자는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구지성은 레이싱 모델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레이싱 계 톱스타다. 다람쥐를 닮은 깜찍한 외모와 섹시한 몸매가 인기에 한 몫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구지성이란 이름값을 높이는 건 도전에 대한 거침없는 용기다.
모터쇼와 레이싱 경기장을 종횡무진 했던 그녀는 어느새 방송에 진출, 진행자로 자리 잡았고 올 상반기 모델학과 교수로 변신했다. 얼마 전에는 평소 친분을 쌓은 데프콘의 앨범 피처링에 참여해 가요 무대를 누비는 객원 가수로 옷을 갈아입었다.
모델에서 방송인, 또 교수에서 가수로 도전한 구지성에게서 도전 영역 간 장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떤 도전을 하든지 레이싱 모델이란 이름은 꼭 간직하고 싶다는 구지성의 당당한 도전기를 2시간에 걸쳐 들어봤다.
▶ 지금은 레이싱 모델 계에서 한가닥 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한 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을 테다. 레이싱 모델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
“항공과를 졸업한 뒤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 쉴 때였어요. 레이싱 모델이었던 친구가 서울 모터쇼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고 소개해 줬죠. 처음에는 짧은 치마와 배가 보이는 티셔츠를 입는 게 어색했고 사람들 앞에 서는 자체가 부담스러웠어요.”
▶ 10cm 넘는 하이힐에 노출 있는 의상까지.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상황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레이싱 모델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제가 승부욕이 있어서 다른 모델들 보다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표정 연습도 하고 포즈도 연구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얻었고 사람들이 나를 카메라에 담는 상황도 즐기게 됐어요. 대신 부산에 계시는 부모님 반대가 있긴 했죠.”
▶ 레이싱 모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구지성은 알더라. 그만큼 레이싱 모델 계에서는 톱스타라는 것일 텐데. 어느 분야든 몇 년 동안 1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건 대단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있을 것 같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솔직히 스트레스가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해요. 어리고 예쁘고 날씬한 후배들이 매일 매일 치고 올라오는 긴장감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요. 훌륭한 후배들이 등장하니 좋은 자극제가 돼요.”
▶ 훌륭한 후배를 바라보는 건 뿌듯하지만 분명 경쟁심이 생길 것 같다. 어떤 노력을 하나.
“다이어트와 운동은 계속 하고요. 어떻게 하면 더 어려 보일지 표정과 포즈를 연구해요. 후배 모델들이 속으로 욕할 수 있겠죠?(웃음) 저만의 노하우는 행사 당일 날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거예요.”
▶ 요즘 인기의 척도는 안티팬 규모라는데 안티 팬은 좀 있나?
“인터넷을 즐겨 하는 편이라서 안티 팬들이 쓰는 글은 거의 다 찾아봐요. 예전에는 글 하나하나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요즘은 웬만한 내용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어요.“
▶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구지성 씨에 대해서 검색을 했는데 성형에 대한 의혹이 많았다. 우스갯소리겠지만 ‘7단 변신’이라면서 과거 사진을 7단계로 비교해놓기도 했던데 혹시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죠. 저는 솔직한 편이라서 성형수술에 대해서도 속이고 싶지 않아요. 네. 성형수술은 했는데요, 7단 변신은 절대 아니에요. 눈매 교정하고 볼 살이 너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많아서 보톡스를 맞았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전신 성형설 절대 사실이 아니에요.”
▶ 성형에 대한 솔직하고 시원한 해명이 인상 깊다. 대중이 레이싱 모델들에 갖는 또 하나의 오해는 스폰서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한 레이싱 모델이 스폰서에 대해 방송에서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폰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실제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은 있어요. 몇 년 전 한 모터쇼에 나이 지긋한 남성이 다가와 ‘구지성씨 맞냐.’고 말을 걸었어요. 친절하게 답해줬는데 알고 보니 레이싱 모델들에게 접근하는 전문 스폰서 브로커였더라고요. 이런 일이 제 앞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에 많이 놀랐죠.”
▶ 게임 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방송 DJ를 거쳐 최근에는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 서울 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일주일에 4시간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죠. 오늘 중간고사를 봤어요.”
▶ 어떤 수업을 주로 하나.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표정, 자세, 말투, 자신감 등 수업에서 제가 모델 경험으로 얻은 다양한 내용을 실전 위주로 가르치고 있어요.”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까 저를 편하게 대해요. 오늘도 ‘교수님 힌트 좀 주세요.’라고 넉살좋게 물어봤어요.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저 역시도 많은 걸 배우고 있죠.”
▶ 최근에는 래퍼 데프콘의 객원 싱어로도 활약하고 있더라.
“버라이어티 쇼 ‘엠티왕’에 함께 출연해 친해진 데프콘 오빠의 녹음실을 찾았다가 즉흥적으로 도전하게 됐어요. 오빠가 다듬어지지 않은 아마추어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그랬나 봐요. 아무런 연습 과정 없이 노래를 하다 보니 사실 많이 부끄럽죠.”
▶ 첫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노래와 함께 섹시한 웨이브 댄스도 선보이던데.
“사실 저도 노래방에서는 제법 노래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첫 무대에서는 너무 떨려서 실수 만발이었어요. 귀에 인이어도 꼽지 않고 무대에 올랐고 시선은 카메라를 계속 따라갔죠. 첫 방송 보면서 후회 많이 했어요.”
▶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하라는 제안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저는 무언가에 도전하면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노래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거 같아요.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한 분들이 많잖아요. 지금 당장 그런 제안이 오더라도 거절할 것 같네요.”
▶ 레이싱 모델에서 방송인, 교수에서 가수까지 도전했는데 그 다음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
“요즘 연기에 도전하려고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좋은 작품과 배역이 다가올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그 길을 향해서 노력하는 중이에요.”
▶ 연기자까지 도전하면 이젠 레이싱 모델은 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진 않아요. 머리가 하얘지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불러만 준다면 모터쇼에 서고 싶어요. 제가 레이싱 모델로 데뷔했으니까 전 어떤 도전을 하든 레이싱 모델이란 직업을 계속 갖고 싶어요.”
▶ 레이싱 모델에 대한 대단한 애착이 느껴진다. 레이싱 모델을 꿈꾸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레이싱 모델을 선택하려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레이싱 모델은 고정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탈피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네요. 그리고 한국 레이싱 모델계가 발전하려면 일부 악덕 모델 에이전시에서 행하는 불투명한 거래가 근절 돼야 할 것 같네요. 신인들이 임금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투명한 거래와 임금 지급 등이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동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상인VJ bowwow@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