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은 이름 그대로 빛조차 흡수하는 검은 구멍이다. 따라서 블랙홀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 우리는 그 존재를 알아내기 어렵다.
그런데 우주에 존재하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경우 역설적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 가운데 하나다. 거대한 중력으로 주변에서 물질을 흡수하면서 에너지를 내놓기 때문이다.
블랙홀로 흡수되는 물질은 강착원반이라는 거대한 고리를 형성하며 블랙홀로 다가간다. 그런데 블랙홀의 크기에 비해서 들어가는 물질이 너무 많으면 모든 물질이 흡수되지 못하고 상당 부분이 제트의 형태로 분출된다.
따라서 블랙홀이 내놓는 물질과 에너지는 흡수되는 물질의 양과 비례한다. 과학자들은 초고온의 강착원반과 제트를 관측해 블랙홀의 활동성을 파악하고 존재를 증명해왔다.
은하 중심 블랙홀은 태양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의 질량을 가지고 있어 강력한 중력으로 많은 물질을 흡수하면서 큰 에너지를 방출한다.
특히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경우 이를 활동성 은하핵(Active Galactic Nuclei·AGN)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변광성처럼 밝기가 변하는 활동성 은하핵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블랙홀로 흡수되는 물질이 갑자기 줄어들었다가 많아진 것이다. 마치 굶주렸던 사람이 폭식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찬드라 X선 위성을 비롯한 다수의 관측 장비를 이용해서 활동성 은하핵 가운데 하나인 ‘마카리안 1018’(Markarian 1018)을 관측했다.
이 블랙홀은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짧은 시간인 5년 정도에 갑자기 밝아졌다 극도로 어두워졌다. 1980년대 이 사건이 있었을 때는 관측 장비가 부족했지만,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는 찬드라 X선 위성은 물론 유럽남방천문대(ESO)의 초거대망원경(VLT) 등 다양한 관측 장비들이 마카리안 1018을 정밀 관측할 수 있었다.
관측 결과 이 블랙홀이 갑자기 굶주렸다 폭식한 이유가 근방을 지나던 별을 흡수한 것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시에 암흑 성운에 의해 가려서 생긴 현상도 아니었다.
관측 데이터가 지지한 가설은 두 개의 거대 블랙홀이 있어 서로 물질 흡수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은하 간의 충돌과 합체의 과정에서 은하 중심 블랙홀이 두 개가 되는 일이 있는데, 이 경우 은하 중심 물질의 흐름은 두 개의 블랙홀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물질이 지속적해서 흡수되지 못하고 중간중간 방해를 받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번 관측을 통해서 은하 합체 시 발생하는 은하 중심 블랙홀 간의 상호작용을 더 자세히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굶주렸다가 폭식하는 일은 건강에 좋지 않지만, 블랙홀의 경우에는 감춰진 진실을 알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사진=마카리안 1018의 X선과 광학망원경 영상(NASA/ESO)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