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 중 일부에게서 바이러스 감염만큼이나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다. 바로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는 종양용해성 바이러스가 그 주인공이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자기 스스로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숙주 세포의 자원을 이용해 증식하고 마지막에는 숙주 세포를 파괴시키고 수많은 바이러스 입자를 퍼트린다. 그런데 바이러스마다 각기 들어갈 수 있는 숙주 세포가 다르다. 따라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있다면 암세포에만 치명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제로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15년 FDA는 T-VEC(talimogene laherparepvec)이라는 종양용해성 바이러스를 승인해 실제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시대를 열었다. T-VEC은 입주위에 물집을 만드는 성가신 바이러스인 단순 포진 바이러스 1(HSV-1)에서 유전자 2개를 제거한 후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GM-CSF라는 물질의 유전자를 첨가해 만들어졌다. 이 바이러스가 암세포에 침투하면 내부에서 증식하면서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을 분비해 감염되지 않은 암세포에 대해서도 면역 시스템의 2차 공격을 유발한다.
T-VEC의 목표는 치료가 대단히 어려운 암인 흑색종이다. T-VEC은 수술이 불가능한 흑생종 환자 10.8%에서 완전히 암세포를 제거했고 전체적으로 4.3개월 정도 수명을 증가시켰다. 비록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숫자는 적었지만, 다른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흑색종 환자에서 일부라도 완치가 가능했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새로 승인받은 종양용해성 바이러스는 없는 상태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T-VEC을 능가할 차세대 종양용해성 바이러스를 개발해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영국 런던 암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역시 유전자 조작 단순 포진 바이러스인 RP2의 1상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RP2 역시 암세포를 골라 감염시킨 후 파괴하고 동시에 면역 물질도 생산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원리다.
1상 임상 연구에는 39명의 환자가 참여했는데, 9명은 RP2를 단독 투여하고 30명은 니볼루맙(nivolumal) 병행 치료를 진행했다. 9명의 환자는 의학적으로 다른 치료를 기대하기 힘든 환자들로 이 가운데 3명 정도가 RP2 투여로 이득이 있었다. 한 명은 15개월 동안 암이 사라졌고 나머지 두 명도 15개월과 18개월간 병이 진행하지 않았다. 나머지 30명이 병합 요법 군에서는 7명이 이득을 봤는데, 6명에서는 암의 진행이 14개월 중단됐다. 1상 임상 시험에 참여한 환자 중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는 없었다.
현재는 1상 임상 시험 결과로 아직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연구팀은 앞으로 2상, 3상 시험으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판단하고 다음 연구를 진행 중이다. 종양용해성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된다면 골치 아프고 성가신 바이러스를 생명을 살리는 기적으로 치료제로 바꾸려는 과학자들의 꿈도 이뤄질지 모른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