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과학

하루 소주 9병?…매일 술 마시면서 나는 벌새의 비밀 [와우!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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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은 적어도 기원전 3000~4000년 전부터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고 맥주의 기원 역시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술은 사실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부 동물의 경우 발효되어 알코올이 들어 있는 과일을 선호한다. 반면 부득이하게 많은 양의 알코올을 매일 섭취하는 동물도 있다. 벌새가 먹는 꿀에는 소량이지만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새는 가장 대사율이 높은 척추동물로 하루 자신 몸무게의 80%에 달하는 꿀을 먹는다. 그런데 꽃 꿀은 시간이 지나면 효모 같은 미생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알코올을 일부 지니게 된다. 하루 섭취량에 적고 농축하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날아가는 벌꿀과 달리 벌새는 필연적으로 매일 알코올에 노출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생물학자인 로버트 두들리는 알코올이 벌새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애나스 벌새 수컷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알코올 농도가 1%인 설탕물과 2%인 설탕물을 주고 벌새의 섭취량을 조사했다.

그 결과 농도가 2%인 설탕물의 섭취량은 1% 설탕물의 절반에 불과했다. 사실 사람이 마시고 취하기에는 둘 다 농도가 낮지만, 벌새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80%까지 꽃 꿀을 마시기 때문에 1% 농도라도 체중의 0.8%의 알코올을 섭취한다. 몸무게 70kg인 사람이면 하루 알코올 560g을 섭취하는 셈인데 소주 9병 이상 분량이다.

사람이 이 정도 매일 마신다면 몸을 가누기 힘든 수준을 넘어서 생명이 위험해진다. 하지만 벌새는 대사 속도가 빨라 이 정도 마신 상태에서도 취하지 않고 공중에 정지해서 꿀을 마실 수 있다. 다만 알코올에 적응된 벌새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농도보다 높은 2% 이상은 견디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자연 상태의 꽃 꿀에 들어 있는 알코올의 양은 아무리 높아도 대개 1.5%를 넘지 않아 벌새가 취해 비틀거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알코올은 물보다 낮은 온도에서 기화되어 날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농도가 0.05%까지 낮아질 수 있다.
실제 자연 환경에서 문제될 일은 없는 셈이다. 연구팀은 다른 새 가운데서도 꿀이나 과일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생긴 알코올을 섭취하는 새들이 있다고 보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누구도 벌새보다 체중 대비 주량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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