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여승(女僧)되어 만난 첫 가을은…

작성 2016.11.01 11:23 ㅣ 수정 2016.11.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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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니 사찰답게 규모보다는 작은 석탑과 대웅전 마당의 조화가 곱디 곱다. 청암사 대웅전 앞뜰에 있는 다층석탑으로 2층 기단, 4층 탑신 양식이다.


"사바(娑婆·세상)는 고(苦)의 세계니까 뜻도 두지 말고, 마음도 두지 말고, 돌아도 보지 말아라."

비구니 스님들의 백흥암 수행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 속‘영운스님’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 글귀였다.

영화는 끝까지 담백 진중하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 임용 면접을 앞두고 돌연 출가한 ‘엄친딸’ 상욱 행자,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스님이 될 운명인 ‘동진 출가’의 업(業)을 안은 선우 스님.

3년 동안 하루 한 끼, 극도의 고행 수행인 무문관(無門關)을 향해 떠나는 지엄 스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불교를 접한 신세대 활기 발랄 민재 행자 등의 수행과 고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상의 고통을 맘으로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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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사의 일주문. 이 일주문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편액에 남아있는 글씨때문이다. 예서의 기운을 한껏 품은 힘있고 중후한 글씨체로 근세의 명필이었던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1871~1937)의 작품이다.


2016년 10월 현재, 대한민국은 한 여염집 여인네의 천격(賤格)이 만든 사바세계 속 고통을 온 국민이 감내하는 중이다.

가을 나들이 한 번 선뜻 나서기가 맘 무거운 이때, 극락정토 대덕(大德) 여승이 되고픈 맑고 고운 언니들(?)의 절집에서 위로를 받는 것은 어떨까? 김천 청암사다.

● 장희빈에 쫓겨난 인현왕후의 한(恨)이 서린 곳

각설(却說), 객지 밥 좀 얻어먹고 다녔다는 여행 고수들에게 물어본다. 영남권에서 가을 절경 빼어난 곳 하나만 알려주셔요. 네?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청암사는 가 보셨나요? 정답은 이미 나왔다. 그러면서도 꼭 두 개의 사족을 귀에 달아준다. ‘비구니 스님들 계시는 곳입니다’와 '계곡길 운전 조심하십시오' 라고.

청암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佛靈山) 깊디 깊은 계곡 아래 터를 잡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절집이다.

바로 여승들의 거처이면서 비구니, 사미니를 배출하는 불교 강원(講院)의 맥을 잇는 율원(律院), 즉 승가대학으로 운영되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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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가대학의 중심건물로 쓰이고 있는 육화료. 육화(六和)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서로 친절하고 화합하고 경애하는 여섯가지 법으로서 신(身), 구(口), 의(意), 계(戒), 견(見), 이(利)의 화합을 통한 승가의 실천내용을 말한다.


청암사를 방문하기 전 비구니, 사미니같은 기본 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비구(比丘)라는 말은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은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비구니(比丘尼)는 산스크리트어 ‘bhikkhuni’를 음차한 낱말로 비구와 동일한 절차를 밟은 여성을 뜻하는 표현이다.

한편 사미(沙彌)라는 표현은 ‘samanera’의 음역이다. 갓 출가한 승려, 견습승, 일정한 교육을 끝마치면 비구가 될 수행자를 의미하는 말이며 여자는 사미니(沙彌尼)라 부른다.

청암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한 절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거의 연혁이 내려오지 않은 심산구곡 작은 사찰이었다. 그러다 역사의 뒤안길에 얼굴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바로 조선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이 곳에 은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숙종 15년(1689년)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廢庶人)이 된 왕후가 3년간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부지하였던 곳이 청암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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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현왕후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 조선 중기 궁궐 양식의 양반가 기왓집 형태로 일상적인 사찰 내의 건물로는 잘 쓰이지는 않는 건축형태다.


이러한 인연으로 청암사는 이때부터 궁녀들의 은거처이자 여인들의 발원(發願) 장소로 명맥을 잇게 된다.

또한 청암사는 학풍 높은 불교 강원으로도 이름을 드날리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의 스승인 박한영 스님, 고봉 선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학승들의 강론처로 알려져 공부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온다.

이는 전국에 유명한 비구니 승가대학인 동학사(공주), 운문사(경북 청도), 봉녕사(수원)와 더불어 청암사 역시 손꼽히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 궁녀(宮女)들의 시주로 다시 일어나

청암사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던 절로도 유명하다. 조선 말기까지 늘 화재로 절이 중건이 되는 일은 반복되었고 1911년 9월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전부 불타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늘 화재로 사찰내 법당이나 온전한 요사채가 드물었다.


이런 청암사가 다시금 크게 중건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또 한 여인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청암사 곳곳 절벽과 바위에는 ‘崔松雪堂’(최송설당)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최송설당은 어린 시절 외가가 홍경래 난에 연루되어 힘든 삶을 살다 39세에 불교에 귀의 정진하였다.

이후 상궁이 되는 변신을 통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고 이후 귀비(貴妃)에 봉해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그녀는 1931년 전 재산을 정리하여 지금의 청암사를 재건하였고, 당시 주지였던 대운스님 또한 많은 궁녀들로부터 시주를 구해 두 차례에 걸쳐 청암사를 크게 중건할 수 있었다. 여인들과의 인연이 깊디깊은 곳은 분명하다.

청암사는 절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어서 어디를 보아도 가을 흥취를 넉넉히 느낄 수가 있다. 우선 절의 초입에 있는 맞배지붕의 일주문을 지나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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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사에 오면 반드시 마셔야 한다는 우비천. 소의 코부분에서 나오는 샘이라는 뜻으로 부자가 된다는 속설을 지니고 있어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스님들은 지나갈 때 눈을 가리고 지나가는 곳이다.


천왕문을 넘어서면 청암사의 명물인 우비천(牛鼻泉)이 있다. ‘소의 콧등에서 나오는 샘’이라는 뜻의 우비천은 청암사의 지세가 소가 왼쪽으로 누운 와우형(臥牛形)이어서 나온 말이다.

예로부터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속설이 있어 청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이 되었다.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대웅전과 범종각, 진영각, 육화료 등의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중 육화료(六和寮)는 현재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이고 있다.

또한 언덕 위에는 과거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궁궐 건축 양식의 극락전(極樂殿)과 왕후의 복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광전(寶光殿)이 있다.

특히 보광전 내부에는 한국 사찰에서는 만나기 힘든 42개의 손을 지닌 관음상이 있어 참배객들의 불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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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사의 가을 풍경. 청암사에서는 군데 군데 계곡 바람 맞은 가을 낙엽들이 소소히 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암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어지러히 새겨져 있는데 이중 붉은 글씨 파인 시주자 최송설당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청암사의 가을은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맑다. 그러하기에 비구니 스님들의 생활 도량으로서는 제격인 듯하다.

올 가을 청암사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불심으로 여승(女僧)이 된 우리네 언니들의 곧은 맘을 한껏 응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청암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가을 경치 아름다운 곳이 많다. 고창의 선운사나 인근의 직지사도 훌륭하지만, 불령산 계곡 아래 호젓한 가을 경치를 조용히 누릴 심사라면 이 곳을 추천한다. 주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연인들. 무흘계곡을 돌아 나가는 계곡길 드라이브와 함께. 없던 사랑도 만들어질 듯.

3. 가는 방법은?

-깊은 산속이다.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청암사로 오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 11시, 오후 4시 20분이며 청암사에서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전 9시 15분, 오후 1시 25분, 6시 15분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번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을 나들이 한창인 주말인데도 관람객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 비구니 스님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는 점. 그리고 불령산 계곡의 깊디 깊은 가을 운무들. 청암산 들어오는 길에 비단처럼 펼쳐지는 무흘계곡.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한 번도 안 온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들은 매 가을마다 반드시 들리게 되어 있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우비천, 육화료, 극락전, 보광전, 부도탑

7. 먹거리 추천?

-김천 지역이 의외로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유명한 곳은 방송에서도 소개되어 유명세가 전국적인, 삼거리식당이라고 불리는 파란 간판의 '장영선원조지례삼거리불고기식당'(054-435-0067), '지례흑돼지식육점식당'(054-435-0011), '호박해물칼국수'(054-430-6875) 등이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chungamsa.org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김천은 직지사로 유명하다. 청암사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무흘계곡도 추천.

10. 총평 및 당부사항

-김천 청암사는 비구니, 사미니, 행자 스님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집절이다. 따라서 조용히! 조용히!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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