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크리스마스, 다시 그리는…대구 김광석 거리

작성 2016.12.22 11:00 ㅣ 수정 2016.1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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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김광석 거리의 야경. 쓸쓸히 기타를 안고 있는 김광석의 동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덧 눈물짓게 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서른 즈음에' 가사 中 일부)

거의 처음인 것처럼, 또 하루 다가오는 2016년의 크리스마스는 어쩐지 애달프다.

고되고 힘든 세밑 가까운 성탄절에 우리에게는 다시 고 김광석(1964~1996)의 주름진 미소가, 눈 감기는 하모니카 선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대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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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는 쇠락해가던 재래시장인 방천시장을 살리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김광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알아야만 한다. 김광석의 부친은 자유당 정권 시절 교원노조 사태로 교단을 떠난 강골의 전직교사였다.

정권의 핵심 기반이었던 대구 지역에서, 서슬 퍼렇던 공안의 삼엄한 분위기에서 그의 아버지는 당시 영남지역에서는 ‘드물디 드문’ 해직 교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1964년 1월 22일 김광석은 그러한 아버지를 둔 3남 2녀의 막내로 대구 방천시장 한 켠에서 첫 울음을 운다.

사실 방천시장은 지금도 대구에서는 소규모의 재래시장으로, 대구 시내 중심에 흐르는 작은 신천 강변에 1945년 광복 후 해외에서 돌아온 전재민(戰災民)들이 만든 고단한 생계의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방천시장에 터를 잡으면서 부지면적이 약 6600m²에 이르는 지금의 시장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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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거리에 있는 김광석 전신상. 대표적인 거리의 포토존으로, 하루 종일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는다.


바로 이곳에서 김광석은 태어났고, 삶의 신난(辛難)을 피해 그의 가족들은 대구의 방천시장과 삶의 고단한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던 서울의 창신동으로 이주한다.

이후 서울에서 중, 고교, 대학을 다녔던 그에게 대구의 방천시장 힘든 삶은 그와 그의 가족이 지녔던 슬픔의 심연(深淵)으로 남았으리라.

아마도 그가 1984년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 작업에 참여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녹두꽃’을 열창하던 분기 가득한 절규의 목소리는 이렇듯 태어날 때부터의 타고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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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아들과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엄마.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에는 이렇듯 다양한 벽화가 많아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있다.


데뷔 이후 김광석은 ‘노찾사’의 간판 가수이자, 민중가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며 각종 집회에 참여하며 시대의 정신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1988년, 7인조 그룹인 동물원을 결성하고 음반을 발표한다.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 사랑’, ‘어느 하루’,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등을 담은 앨범은 당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를 계기로 김광석은 본격적인 프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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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관광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자물쇠 코너. 이곳에는 다양한 사랑의 언약을 하고 있는 글귀들을 볼 수가 있다.


1989년에 내놓은 솔로 1집에 ‘기다려줘’, ‘너에게’, 1991년의 2집에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 그리고 1992년에 발매한 3집에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1994년에는 ‘일어나’를 수록한 4집 앨범을 완성함으로써 김광석은 한국 가요사에서 포크가수이자 민중가수로서의 확고한 자신의 정체성을 남기게 된다.

또한 1996년 8월에는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에 달하는 소극장 기념 공연을 이루어냈고, 그해 11월에는 미국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러다 돌연 1996년 1월 6일, 만 31세의 나이로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택 계단에서 숨지고 만다.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하여 많은 추측과 뒷말들은 무수히, 여전히 오간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팬들은 여전히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에 눈시울을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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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거리의 모습. 이 좁은 수성천변 제방길 사이로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이 있다. 최근에 많은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거리는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슬픔과 추모의 공간을 위해 대구광역시는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에 2010년 11월 20일, 90m 구간에 이르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하였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 에서 착안하였으며 ‘그리기’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면서(想念) 그린다(畵)는 이중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

원래 이 사업은 쇠락해가던 재래시장이었던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에 불과하였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는 거의 400m에 가깝게 거리는 늘어나고 있으며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하루 1만 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한 거리가 되고 있다.

<김광석 거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대구에서 ‘근대골목투어’를 끝내고 시간이 남는다면, 김광석 거리 하나만을 보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한다면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있다. 아직은 계속 거리가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 있다.

2. 누구와 함께?

-우선은 연인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는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대구 방천시장.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

4. 감탄하는 점은?

-방천시장 야시장. 기존 재래시장의 노전들과 달리 젊은 기운이 가득하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김광석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아직은 좀더 거리가 다듬어지고 채워져야 한다. 김광석이라는 이름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방천시장으로서는 행운 중의 행운임을 알아야 한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그냥 거리를 둘러보면 된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김광석 거리 인근의 지역 대표 일본식 라멘집 대봉동 경도미야꼬 우동(424-5660), 동성로 미야꼬 우동(424-5660)/ 서영 홍합밥(253-1199)/ 중국인이 운영하는 고기만두 영생덕(255-5777)/ 야끼우동 중화반점(425-6839)/ 냉면은 대동(255-4450)/ 납작만두 미성당(255-0742)/ 마약빵 삼송제과(254-4066)/ 김밥 미진분식 (425-1120) 지역번호는 053.

8. 홈페이지 주소는?

-www.jung.daegu.kr/new/culture/pages/main/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청라언덕, 계산성당, 진골목, 달성공원, 교동시장, 향촌문화관,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야시골목 등등

10. 총평 및 당부사항

-아직은 기대만큼의 거리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대구의 명실상부한 방문명소가 될 수 있다. 김광석이라는 아름다운 청년의 이름에 걸맞는 거리가 되기를.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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