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AMD가 꾸준히 젠 아키텍처를 업데이트하고 미세 공정을 7㎚까지 진전시키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인텔은 거짓말처럼 미세 공정 전환이 더디게 진행되어 이제야 일부 제품을 10㎚로 업데이트했을 뿐입니다. 최신 아키텍처인 서니 코브와 윌로우 코브 역시 10㎚ 제품군에만 적용되어 아직도 데스크톱 및 서버 부분에서 오래된 14㎚ 공정과 스카이레이크 기반의 낡은 아키텍처로 AMD의 공세를 간신히 막아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쳐 이번 3분기 실적은 충격적인 부진을 기록했습니다.
인텔은 2020년 3분기에 183억 달러의 매출과 51억 달러의 영업 이익을 올려 여전히 상당한 수익을 기록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6%와 22% 감소했습니다. 특히 뼈아픈 부분은 지난 몇 년간 인텔의 성장을 견인했던 분야인 데이터 센터 그룹의 매출이 7%, 영업이익이 39%나 급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인텔의 주가는 7㎚ 공정 지연을 발표했던 지난 7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경쟁자인 AMD 주가는 반대의 경향을 보입니다.
데이터 센터 그룹은 서버용 CPU와 그 외 기업용 제품군을 의미하는데, 매출과 영업이익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판매 단가 역시 15%나 감소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업과 정부 수요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고급형 제품군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말을 아꼈지만, 서버 시장에서 AMD와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큰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됩니다. AMD의 서버 CPU인 에픽은 7㎚ 미세 공정을 사용한 2세대 제품 출시 이후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경쟁자를 압도하는 64코어에 가격 대 성능비는 물론 전력 대 성능비도 탁월해 x86 서버 시장에서 인텔의 점유율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경쟁자를 대적하기 어려운 인텔의 선택지는 가격을 낮추는 것뿐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생각보다 큰 매출 및 영업이익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요인이 올해 4분기나 내년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기술력에서 경쟁자를 따돌리지 못하면 결국 이전처럼 높은 가격을 붙여 팔기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계속해서 점유율을 빼앗기면 천하의 인텔이라도 2등 기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최근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 낸드 사업부 매각 역시 이런 위기감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인 CPU나 미래 먹거리 사업인 옵테인 등에 집중해 AMD와 다른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인텔은 올해 상반기에 낸드 사업 부분에서 28억 달러의 매출과 6억 달러의 영업 이익을 거둬 나름 나쁘지 않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급하게 낸드 사업부를 매각해야 할 만큼 회사의 경영 지표가 악화한 게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 회사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흑자 전환한 낸드 사업부까지 매각하는 특단의 대책이 나온 것입니다.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키텍처와 미세 공정에서 경쟁자를 따라잡는 것뿐입니다. 지연된 7㎚ 공정을 빠르게 도입하고 5㎚ 이하 차세대 미세 공정 진입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인텔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반도체 1위 기업으로써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진=2020년 3분기 인텔 데이터 센터 그룹 실적 요약. 출처: 인텔)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