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발바리 수도’ 발명한 80세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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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더 나은 방법이 있어요. 사람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해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처럼 고정관념을 깨야지요.”

종로 4가에 있는 김예애(80) 할머니의 ‘이지 밸브’ 사무실은 승강기가 없는 건물의 6층에 있었다.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는 화사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이했다. 30대의 기자도 헉헉대며 올라가는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는 할머니는 특별한 건강비결이 없다고 했다.

”오늘날까지 규칙적으로 살았어요. 4호선 성신여대 역에서 1호선 종로 5가 전철역까지 매일 출퇴근하면서 많이 걷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설거지하는 며느리보고 발바리 수도 발명

방송 출연 횟수가 15번이 넘고 무수한 인터뷰 경험 탓인지 말솜씨도 뛰어나고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러운 김예애 할머니. 지난해 7월 둘째 주에 MBC로부터 이주의 ‘명랑 히어로’에 선정될 정도로 할머니가 늘그막에 유명세를 탄 것은 ‘이지 밸브(발바리 수도)’를 직접 발명한 사람이 바로 김예애 할머니기 때문이다.

발바리 수도는 싱크대에서 일일이 손으로 수도꼭지를 잠그거나 틀 필요없이 발로 온수, 냉수를 모두 조절할 수 있고 심지어 물을 가득 받을 수 있도록 스위치가 고정되기도 하는 할머니의 발명품이다.

2002년 특허증을 받기까지 할머니는 “집에 가서 손자나 보시지요.”라는 말을 무수히 들어가며 특허사무소와 수도꼭지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다녀야 했다.

할머니는 처음 발바리 수도를 만들 때를 회상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설거지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너무 물이 헤픈 거에요. 비누거품이 묻은 그릇을 헹궈서 그릇 받침대에 옮겨 놓기까지 아까운 물을 그냥 흘려보내잖아요. 쓰는 물보다 버리는 물이 더 많아서 손은 일하고 쉬는 발로 수도를 틀 수 없을까 했는데 며느리가 수도꼭지를 손으로 틀지 어떻게 발로 해요 라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해보겠다고 했지요.”

일찍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그동안 교사, 잡지사 광고국 영업사원, 자수공장 사장 등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63살에 중국의 값싼 자수가 밀려들어 오면서 공장 문을 닫고 은퇴했지만 가사일에 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젊어서 과부가 됐으니 어떻게든 아들을 먹여 살려야지 놀 수가 없었어요. 그게 몸에 배어 늙어서도 뭔가 해야만 해요.”

●이태원에서 일본인 상대 민박집도 운영

발바리 수도 발명에 골몰하기 전에는 이태원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일본강점기에 배운 일본어 실력으로 한국과 일본 사람 모두 “다정하게 삽시다”란 운동을 벌인 것이다. 일본 친구들과 이메일을 하려고 컴퓨터도 배웠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나 독립문 공원,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장소 등에 데려갔다.

당시 한창 유럽이 통합되려던 때라 “아시아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라고 하면 일본 사람들은 “참 정확하고 품위있는 일본말을 구사한다.”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고 한다. 일본말을 어쩔 수 없이 배운 세대로 죽기 전에 일본어 실력으로 무엇인가 이바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쉬지 않는 열정은 발바리 수도의 발명과 벤처 기업 ‘이지 밸브’의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기계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발바리 수도의 금형 과정까지 일일이 배우고 좇아다닌 정성으로 실용신안 특허증을 받았으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발명은 멋모르고 하는 거지 할 일이 못 된다.”라고 말했다.

이제 할머니의 꿈은 발바리 수도를 전 세계에 공급하는 것이다. 각 대학의 무역학과 학생들이 중국과 두바이에서 전시회를 하고 발바리 수도를 홍보하기도 했다. 발명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집중, 돈, 시간이라고 김예애 할머니는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깨는 거지요. 잠수부는 물고기가 아니라도 바다 속을 돌아다니잖아요. 수도꼭지를 손으로만 틀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발바리 수도를 발명할 수 없었지요.”

특별한 할머니의 설은 특별하지 않다. 혼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찾아와 음식을 해먹으며 보낸다. 설날 발바리 수도에서 나오는 물로 요리와 설거지를 하며 할머니는 아마도 뿌듯하기보다 개선점을 찾아내려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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