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 서면 아직도 낯설어요.”
김가을(32) 삼성전자 칸 감독은 꾸밈없는 사람이다.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영락없는 털털한 아가씨다. 그간 무수히 많은 언론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의 눈맞춤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e스포츠로 눈을 돌리면 털털한 김가을의 이미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007, 2008년 프로리그 결승전 장소인 부산 광안리에서 2연패, 역대 최단기 프로리그 통산 100승 고지 점령 등의 화려한 기록이 e스포츠계의 명장임을 말해준다.
e스포츠 첫 여성 감독인 김가을 감독은 최고의 승부사로 꼽힌다. 주변에선 김가을 감독의 역량을 가리켜 ‘누나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고 있다.
“누나 리더십이요? 저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여자니까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여성 감독보다 선수 출신 감독으로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누나 리더십’이 생소한 이유는 그의 선수 관리 면에서도 나타난다. 감독과 선수 간 거리를 두고 일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공과사를 엄격히 구별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낮은 것은 아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동거동락을 함께 해 온 선수들 생각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송병구 선수의 우승을 꼽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송병구 선수의 지난해 스타리그 우승이 가장 인상적인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송병구 선수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프로리그 우승 때보다 훨씬 큰 감동을 받았죠.”
흔히 김가을 프로게임은 ‘데이터 게임’으로 표현된다. 그의 머리 속에는 모든 프로게임단 선수들의 데이터가 빠짐없이 입력돼 있다. 팀전력 상승 전략은 역량있는 외부 선수를 영입하기 보다 신인 육성을 통해 팀 전체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테란 쪽이 약하다는 판단 하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 문제는 외부 선수 영입보다 신인 육성으로 풀어갈 것입니다. 감독으로서 최고의 성취감은 자기 손으로 발굴한 선수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즐겨온 그야말로 올드 게이머다. 그동안 접한 고전 게임도 수두룩하다. 쉬는 시간이면 지금도 이들 게임을 꺼내 즐길 만큼 애정도 각별하다. ‘스타크래프트’와의 첫 만남도 게임으로 친분을 쌓은 대학 선배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인연은 2000년대 초반에 시작한 프로게이머 활동을 거쳐 2003년부터 감독 생활로 이어졌다. 김 감독이 처음 e스포츠계에 몸을 담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만류가 컸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기업에 취직해 일반적인 삶을 살길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소신과 꿈 때문이다.
“e스포츠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감독으로서 목표는 삼성전자 칸이 e스포츠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한 획을 긋는 것이죠. 지난번 광안리 우승 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 / 사진 = 강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