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은 뭔가를 진짜로 알기엔 짧은 기간이지만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100년 역사의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지난 4월 종이신문을 폐간하고, 웹 사이트로만 뉴스를 보도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즉각 세계적인 기사가 됐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비록 당시 5만 6000부 정도를 발행했지만, 미 전역에 배포되는 3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세계 8개 지역에 지국을 두고 심도 있는 국제 기사를 써 왔다. 이는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퓰리처상 7번 수상으로 이어졌고 깊이 있는 시각에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사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편집장인 마샬 잉거슨은 “신문 정기 구독자의 90%가 일간지 대신 발행하는 주간 잡지의 정기 구독자로 남았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로 일간지를 받아보던 사람들이 주간지를 보고 만족해한다.”라고 소개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일간 신문을 폐간한 대신 펴내는 주간지의 정기 구독자는 약 5만 명이다. 웹 사이트에 실리는 것과는 다른 뉴스를 담은 주간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리고 날마다 뉴스를 요약해 PDF 파일로 독자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A4용지 2장 분량의 ‘데일리 뉴스 브리핑’ 메일의 구독료는 월 5.75달러(한화 약 7200원)이다. 유료 구독자는 1만 5000여 명이다.
잉거슨 편집장은 새로운 콘텐츠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면 킨들, 아이폰, PDA 등에도 기사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짧은 기사를 더 자주 인터넷에 올려
종이신문이 사라지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공급하면서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을까.
우선 기존 인력의 17%를 줄였다. 하지만 해외 지국과 특파원의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가장 큰 강점이 폭넓고 해박한 국제 뉴스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짧은 기사를 더 자주 쓰도록 강조했다.
예를 들어 대법원에서 중요한 판결이 내려질 때 예전에는 긴 기사를 하나 쓴다면 이제는 결정 전에 한 개, 결정 이후 한 개 그리고 분석과 제3의 시각을 담아 또 다른 기사를 쓰는 식이다. 결국 기사의 양은 예전 종이신문 때보다 훨씬 많다.
종이신문일 때와 또 달라진 점은 기사의 타이밍이다.
마샬 잉거슨 편집장은 “웹에서는 최초의 특종보도가 최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MSN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에서 최초 보도를 한 다음 3~4시간 뒤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만의 독특한 시각을 더해 뉴스를 배포하는 것이 오히려 트래픽을 모으기에는 더 좋다고 덧붙였다.
잉거슨 편집장은 “지난 주에 8명의 기자가 근무 중인 워싱턴 지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짧은 기사를 쓰면서 기사의 질이 낮아졌다(shallow)고 불평하더라.”고 전하면서 “지금은 실험하고 배우는 중이며 우리의 가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 지국의 기자들은 하루 평균 2건의 기사를 출고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어떤 사람도 해치지 않고 인류를 축복한다(injure no man but bless all mankind)’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란 신흥 종교를 만든 메리 베이커 에디가 정한 것으로 그녀는 신문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그리스도를 통해 건강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영유하자는 종교로 심리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강조해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사이언톨로지와는 전혀 다르다. 신문사가 위치한 보스턴 다운타운 일대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플라자라 불리는 곳으로 최초로 설립된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가 있다.
교회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를 후원하고 있지만 신문사가 자생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잉거슨 편집장은 밝혔다. 신문사 직원의 60%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도이며 40%는 비종교인이다.
●종이신문이 사라지면 인터넷 방문자도 줄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 비슷한 시기에 허스트 그룹이 소유한 146년 역사의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PI)도 종이신문을 폐간하고 인터넷으로 전환했다. 지난 3월 16일 이후 더 이상 일간 종이신문을 찍어내지 않는 시애틀 PI는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급감했다. 2월에 1800만 명이었던 방문자 숫자가 3월에는 140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제이 조스틴은 “시애틀 PI는 우리와 전혀 다른 경우”라고 강조했다.
시애틀 PI는 허스트 그룹이 늘어나는 적자에 매각하려고 내놓았다가 인수자가 없자 인력 대부분을 구조조정하고 최소한의 인력인 20여 명만 홈페이지 운영을 위해 남겨놓았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역시 근본적으로 늘어나는 적자에 인터넷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주간 잡지, 이메일 뉴스 브리핑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기사를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등 네트워크 사이트를 활용해 뉴스를 퍼뜨리는 활동도 필수적이다.
홈페이지 트래픽은 한 달 평균 700만 페이지뷰를 기록 중이며 신문을 폐간한 직후인 4월에는 오히려 82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다고 조스틴은 설명했다.
●전문가 블로그, 편집장 비디오로 독자 모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연예 뉴스(celebrity news)가 트래픽을 모으는 가장 쉬운 길이다.
잉거슨 편집장은 “가십을 보도하는 쉬운 길로 가지 않고, 우리의 강점이자 브랜드인 국제 뉴스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뉴스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신문사가 많아서 이러한 장점이 앞으로 더욱 두드러지리란 게 잉거슨 편집장의 생각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기자 개개인에게 블로그를 하라고 권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책, 정원 가꾸기, 머니, 테러리즘&보안 등 19개의 전문가 그룹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또 기자들이 직접 찍는 동영상도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 년 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모든 기자들에게 캠코더를 지급하고 교육을 했다. 하지만 허비한 시간에 비해 기자들이 찍은 동영상이 별로 트래픽을 끌지 못하자 기사를 쓰는 데 집중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하지만 사진 기자들은 질이 나은 동영상을 생산하고 있어서 예외다.
잉거슨 편집장은 “트래픽 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뉴스고 그 다음이 블로그, 마지막이 비디오다.”라면서 “블로거를 기자로 고용할 계획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취재 기자와 편집 기자들이 자체 생산 기사 외에 통신사의 뉴스나 다른 매체의 뉴스를 가공 편집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는 역할도 맡고 있다.
존 예마 편집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체적으로 비디오를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린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비디오에 출연했던 예마 편집장은 전 세계 각지에 파견된 특파원들과 전화 등으로 나누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제이 조스틴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홈페이지에 광고를 할 기업의 숫자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례로 최근 국제 뉴스 섹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영화 광고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제 뉴스에 경쟁력을 가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장점을 산 광고였으며, 광고 단가도 높았다고 덧붙였다.
잉거슨 편집장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독자층은 크게 둘로 본다. 우선 세계적인 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다. 이들을 위해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시리즈로 중점 보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깨끗한 물과 농업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독자층은 은퇴하고 시간이 많은 사람으로 이들도 타인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작지만 강하고 특색있는 신문의 미래를 보여준다. 수익성이 없는 종이신문 발간을 중단하고 과감하게 인터넷으로 전환한 이유는 앞으로 신문의 미래가 웹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전환한 이후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취재진들이 ‘신문의 미래’를 묻고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를 방문했다. 이들에게 들려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신문사와 ‘차이’를 만들었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만의 강점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보스턴·시애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