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렌즈에 세상을 담아내던 그가 막상 카메라 앞에 서자 무척이나 쑥스러워했다. 내심 배우들에게 미안했던 일들이 스친다는 그는 2009년 최고의 화제작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연출을 맡았던 진혁 PD다. 기자와 마주앉기 전 사진 촬영부터 한 진혁 PD는 카메라 앞에서 내내 어색한 미소와 포즈로 ‘얼어 있었다.’
28부작 주말드라마를 끝내고 받은 ‘밀린’ 휴가를 즐기던 중에 만난 진혁 PD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느꼈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가득 담고 있는 ‘선한’ 사람이었다. ‘초대박 드라마’의 일등공신인 그는 요즘 ‘술 턱’을 내느라 지출이 많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최근 드라마 공식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막장=대박’을 과감하게 부숴버린 진혁 PD는 “대본의 힘을 믿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일약 ‘스타PD’가 된 기분을 묻자 그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도 없고요. 사실 이렇게까지 대박이 날 줄은 몰랐어요.(웃음) 드라마 제작 전에 반대가 많았으니까요.”라며 방글방글 웃었다.
“지금이야 대스타들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찬란한 유산’에 캐스팅 된 주인공들의 인지도가 낮아서 주위에서 우려가 많았었죠. 하지만 저는 젊은 배우들과 학창시절 분위기를 내면서 ‘으쌰으쌰’ 일하고 싶었어요. 워낙 된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중견 배우 분들이 함께 해주신다면 성공은 자신 있었죠.”
‘전국시청률 47%’라는 훈장을 얻은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 하지만 제작 당시에는 ‘조기 종영설’까지 나돌 정도로 드라마가 ‘약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진혁 PD의 자신감, 아니 ‘배짱’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단 소현경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어요. 작년에 작가님을 다른 작품 제작논의 단계에서 처음 만났는데 아쉽게도 불발됐었죠. 그러다 다시 ‘찬란한 유산’으로 만나게 됐어요. 워낙 작가님의 대본이 탄탄했기 때문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어요. 제가 원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그 부분이 작가님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승기를 ‘시청률 70%의 사나이’로 한효주를 ‘인상녀’로 만든 ‘찬란한 유산’의 수장 진혁 PD. 그는 “이승기와 한효주를 반드시 주인공으로 내세워 드라마를 신선하게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가 본 (이)승기나 (한)효주는 말투나 행동만으로도 성실하면서도 영리하다고 느껴져요. 드라마 첫 미팅 때부터 그랬어요. 승기랑 효주는 ‘찬란한 유산’ 시놉시스를 보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빨리 연기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배우들과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찬란한 유산’의 두 주역 이승기와 한효주에 대한 진혁 PD의 극찬은 계속됐다.
“제가 생각할 때 배우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해요. 우선 성실해야 하고요, 끼도 있어야 하죠. 또 연기를 할 수 있는 머리가 좋아야 해요. 그런데 촬영하기 전부터 승기랑 효주는 그런 부분을 이미 갖췄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저랑 연습을 5번씩 했었죠.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습득하는 능력이 빠르던데요. 솔직히 1, 2회 때는 어색했지만 이후부터는 두 명 다 빠르게 적응했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찬란한 유산’의 시청률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던 ‘찬란한 유산’은 결국 47%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하지만 드라마를 맨 앞에서 이끌어가는 PD가 ‘찬란한 유산’ 때문에 남몰래 가슴앓이 하다가 악몽까지 꿨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사실 ‘찬란한 유산’ 촬영 중에 악몽을 꾼 적도 있어요. 아무래도 승기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촬영일정 때문에 빨리빨리 찍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승기가 분량은 많은데, 연기가 제 기대치에 못 미쳐서 암담했었죠. 그래서 악몽을 꿨었나 봐요.(웃음) 하지만 그건 극 초반 때 얘기예요. 나중에는 정말 잘 해줬죠.”
인터뷰가 한층 무르익던 가운데 진혁 PD는 ‘찬란한 유산’의 촬영 후일담을 들려줬다. 평소 촬영 횟수를 적게, 빠른 시간 내에 찍는 것으로 알려진 진혁 PD는 배우들 마다 정해진 회 차에서 최상의 장면을 뽑아냈다고 귀띔했다.
“승기랑 효주는 대개 첫 번째 촬영이 느낌이 좋아요. 간혹 두 번째가 좋을 때도 있지만 그 이상은 없어요. 신기하게도 (문)채원이는 세 번째 촬영분이 좋았고요. (배)수빈이는 극에 대한 집중도가 빨라서 진행이 빨랐죠. 저는 드라마를 빨리빨리 찍는 게 좋아요. 여러 번 찍는다고 해서 더 좋은 컷이 나오지 않거든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도 절감됐을 테니 두루두루 좋은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②에 계속)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 서울신문NTN DB,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