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언제까지나 요정일수는 없잖아요. 저도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되는데…”
더 이상 국민요정 그룹 핑클의 막내 성유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더듬더듬 “내가 부여주의 공주다.”를 외치며 ‘배우를 흉내내던’ 가수도 아니다. 그녀는 본인이 맡은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었으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 21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SBS 수목드라마 ‘태양을 삼켜라’(극본 최완규ㆍ연출 유철용)의 세트장에서 배우 성유리를, 아니 이수현을 만났다.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성유리는 말투가, 눈빛이, 생각마저도 오롯이 이수현의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은 저한테 20대의 마지막작품이라서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일부러라도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태양을 삼켜라’는 제가 30대 여배우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 될 테니까요.”
촬영장에서 성유리는 ‘억척녀’로 분한다. 극중 이수현의 성격이 그러하듯 성유리는 얼굴에 싫은 기색한 번 없이 묵묵히 본인의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있었다. 그룹의 막내로 출발한 그녀지만 투정이나 응석은 커녕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의젓함이 엿보였다.
“제가 고생하는 건 스태프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죠. 그분들 앞에서 감히 힘들다는 티를 낼 수 없죠. 3~4일씩 밤을 새곤 하는데 다들 분위기가 좋으니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게 되요. 솔직히 예전에 이런 스케줄이었으면 힘들었을 텐데, 이번에는 촬영장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하지만 성유리의 이런 여유는 한 순간에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 수 시간동안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내며 혼자 견뎌야 했을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유독 걸그룹 출신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청자들의 매서운 눈을 버텨낸 게 바로 오늘날 ‘배우 성유리’다.
“가수 출신들이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대중들이 더 엄격하고 냉혹한 평가를 내려주시죠.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고 시작하는 거니까요. 본인 스스로가 잘만 한다면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유리는 어느덧 후배들을 걱정할 줄 아는 선배가 돼 있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여러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만큼 내공 역시 만만치 않으리라. 이전에 사람들 앞에서 수줍게 웃기만 했던 그룹 멤버가 아닌 유쾌한 농담까지 던질 줄 아는 대한민국 20대 후반의 여배우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죠. 앞으로는 고정된 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변할 거예요. 저도 언제까지나 요정일수만은 없잖아요.(웃음)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항상 꽃다운 20대일수는 없으니까…30대 여배우를 준비하기 위해 계속 도전할 거예요.”
사진제공 = SBS
서울신문NTN (서귀포 제주)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