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초 한신 타이거즈 공격이 시작되자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2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3번타자 맷 머튼(사진). 머튼은 이날 경기전까지 정확히 210안타를 기록중이었다. 210안타는 지난 1994년 스즈키 이치로(시애틀)가 수립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과 타이로 이제 한개의 안타만 더 쳐내면 16년만에 이 부문 신기록 달성자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머튼은 상대투수 나카자와 마사토를 상대로 2볼 노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한복판 체인지업을 통타, 타구를 중견수 앞으로 보냈다. 2타점 적시타이자 머튼의 시즌 211개 안타 기록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비록 한신의 홈인 고시엔 구장은 아니었지만 야쿠르트의 홈팬, 그리고 한신의 원정팬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머튼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아이러니 한것은 머튼의 이 안타를 잡아 홈에 송구한 선수가 다름 아닌 중견수 아오키 노리치카였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아오키는 머튼과 함께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아오키는 이미 2005년에 202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으로서는 역대 최초, 그리고 센트럴리그 역사상 첫 200안타를 기록한 선수다.
머튼이 이치로의 최다안타 기록을 깨고 1루에 안착하자 아오키는 글러브를 벗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야구에서나 볼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고 야쿠르트 구단 역시 전광판 자막을 통해 머튼의 신기록 달성을 함께했다. 이날 3개의 안타를 추가한 머튼은 결국 214안타로 시즌을 마감했다.
스포츠에서는 항상 1등만 기억되는 법이다. 아름다운 패자라는 것도 결국 2등에 대한 안타까움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아오키는 결코 2등에만 머문 선수가 아니었다. 머튼에겐 외국인 선수로서 첫해에 이룩한 “최초”라는 수식어가 어울렸지만 아오키 역시 209안타를 비롯해 타율 1위(.358) 타이틀을 획득했기에 그 역시 “최초”라는 찬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오키는 209안타를 쳐냄으로써 개인통산 2번째 200안타 시즌을 작성했다.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두번의 200안타 시즌을 기록한 선수는 작년 아오키가 최초다. 참고로 양리그 통틀어 2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5명으로 퍼시픽리그에서는 지난해 지바 롯데의 니시오카 츠요시(현 미네소타)가 이치로 이후 16년만에 200안타(204개)를 쳐낸바 있다.
하지만 머튼과 아오키의 최다안타 기록경쟁은 이대로 끝나지만은 않을듯 싶다.
얼마전 전 텔레비젼 도쿄 아나운서 출신인 오타케 사치와 결혼식을 올린 아오키는 내년 시즌 목표를 최다안타 기록을 깨는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미야자키가 나은 ‘야구천재’인 아오키에겐 이치로가 메이저리그로 떠나 버린 후 자신에게 쏟아졌던 찬사가 머튼이란 외국인 선수에게 옮겨간 것이 썩 기분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지난해 리그 타율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해마다 쳐온 3할 타율(데뷔 후 6년연속)과 벌써 3번의 타율왕 홀더의 영광은 아오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이치로가 가지고 있던 210개의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자신의 손으로 깨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 그런 그에게 지난해 머튼이 등장했고 아오키 본인 역시 이치로의 210개 안타에 한개가 모자르며 시즌을 종료한 것이 꽤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지난해 머튼이 개막과 동시에 안타행진을 펼치며 꾸준한 활약을 했던 반면 아오키의 시즌 초반은 순조롭지가 못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타율은 물론 최다안타 부문에서 아오키가 1위 경쟁을 할거라고 예상했던 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올스타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기부터 아오키는 그야말로 ‘안타머신’의 면모를 되찾았다. 그의 맹타는 팀을 포스트시즌 경쟁으로 이끌게 했음은 물론 치면 안타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페이스가 엄청났다.
이런 아오키가 올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리드오프로 등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아오키는 주로 3번타순에 들어선 경기가 많았다. 교류전이 끝난 후부터 다시 1번타순으로 돌아갔지만 안타를 하나라도 더 치기 위해서는 3번 보다는 1번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2011년 머튼과 아오키의 ‘최다안타 싸움 2라운드’가 벌써부터 시작된 느낌이다.
머튼은 치려는 성향이 매우 강한 타자다. 그렇기에 삼진도 적지만 볼넷 역시 많지 않은 스타일이다.
반면 아오키는 소위 말하는 컷트 능력이 최고수준이다. 투수를 매우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로 그래서 그런지 볼넷이 많고 특히 몸에 맞는 공이 엄청나다. 아오키는 3년연속 두자리수의 히트 바이 피치드볼을 얻어 맞았고 지난해엔 무려 18개나 됐다.
지난해 머튼의 214개 안타기록이 더욱 경이로운 이유는 우타자임에도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간발의 차이로 1루에서 아웃되는 경우가 제법된다. 이건 좌타자인 아오키에 비해 머튼이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타격성향의 차이로만 놓고 보면 머튼의 적극성이 안타를 생산하는데 있어 보다 유리하다.
원래 야구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홈런왕 싸움이다. 특히 일본은 오 사다하루(현 소프트뱅크 회장)의 한 시즌 최다홈런(55개) 기록에 도전했다가 승부회피로 타이기록에 머물렀던 터피 로즈,알렉스 카브레라의 전례가 있다. 일본토종 선수가 이 기록에 도전한다면 정면승부를 해줄지는 모르지만 최다안타 같은 경우는 이치로가 일본에서 뛸때보다 경기수가 늘어났기에 앞으로 기록경신을 위해 피튀기는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2011년 맷 머튼 vs 아오키 노리치카의 최다안타 싸움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