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1970, 가리봉 오거리를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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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 내부 벽에는 당시 여공들의 열악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 분들입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 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당연히 응당하고 맞는 말이다. 제 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 시절의 누이들에게 ‘마음의 훈장’을 달아주었다.

공지영 작가의 표현대로 1970, 80년대의 구로공단은 하루종일 ‘지독한 소음과 울컥 토해 버릴 것 같은 납 냄새’로 매캐한 공간이었고, 젊은 누이들의 삶이 온종일 겨우 지탱되는 거리였다. 공업용 본드 냄새와 귓불 후벼 파던 미싱 소리에 하루를 푹 절인 몸을 이끌고 들어가 뻑뻑한 잠을 청하던 곳. 스치듯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힘든 일과는 고작 한 달 7만원 월급에 젊음이 풀어졌던 1970년대 공장의 피곤한 밤.

명치끝부터 아련하게 젖어드는 1970년대 가리봉 오거리의 풍광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금천구의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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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가에 위치한 체험관은 당시 구로공단 노동자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


구로공단이라는 말은 지금에서야 서울의 뒤안길로 이름이 쏙 숨어들었지만, 거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지하철 2호선 ‘구로 디지털 단지역’은 예전 ‘구로공단역’이었고, 지하철 1호선의 ‘가산 디지털 단지역’의 옛 이름은 ‘가리봉역’이었다.

원래 이 지역은 자연적으로 점토질의 구릉과 평탄지가 펼쳐져 있어 당시 기술과 자본이 없던 1960년대 경공업 중심의 값싼 임금을 바탕으로 노동 집약 산업 단지 조성에 유리한 곳이었다. 또한 영등포역과는 약 5㎞, 인천항까지는 약 25㎞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원료나 부자재 운반 수송에 용이한 지리적 입지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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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관 내부 전시실에는 1970, 80년대의 구로 공단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이에 정부는 1967년 지금의 구로구 구로 3동 지역에 우리나라 최초의 내륙 공업 단지인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였고 이후 1단지 인접 지역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 약 36만㎡에 제2단지를, 다시 1970년 5월 현재의 구로구 가리봉동과 경기도 철산리 일대에 약 100만㎡에 이르는 제 3단지를 조성하면서 한국 최대의 공업 단지가 구로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600만 평 규모에 이르던 구로 공단에서는 주로 섬유, 봉제, 전자 및 가발 등의 잡화를 생산하는 수출기업들이 대거 입주하였고, 노동력은 주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 가계를 지탱하던 어린 10대 여공들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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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에는 구로공단을 소재로 한 영화, 소설, 시집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금지서적이었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시집이 보인다.


휴일 없이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던 고된 노동의 댓가는 실로 초라했는 데, 1970년대 말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인 15만원의 반도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고향집으로, 동생 학비로 보내고 나면 고작 3만원 남짓의 돈으로 생계를 이끌어 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싼 방을 찾게 되었고, 구로공단 근처 주거형태의 대종은 ‘벌집’이라 부르던, 6.6㎡가 채 되지 않던 월세 1만원 내외의 쪽방들이었다. 이 마저도 서너 명이 함께 생활하였기에 늘상 잠은 싸구려 비키니 옷장에 다닥다닥 붙은 완두콩모양으로 웅크린 채로 하루를 닫아야 했다.

바로 이런 구로공단 누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곳이 ‘가산 디지털 단지역’에 인접한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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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쪽방이라고 불리던 2평 미만의 작은 방에서 보통 3명 이상의 여공들이 거주하였다.


이 곳은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벌집 혹은 닭장집이라고 불렸던 쪽방들을 당시 모양새 그대로 재현해 놓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또한 체험관에서는 70~80년대의 생활환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직접 노동자 생활 체험 및 관련 자료 열람도 가능하다.

이 곳은 현재 6개의 테마별 쪽방으로 구성된 ‘쪽방 재현관’, ‘추억의 구멍가게’, 노동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획전시관’, 당시 노동자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잊혀졌던 구로공단 옛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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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관 옆에는 당시 동네 구멍가게가 재현되어 있어 옛 시간을 불러온다.


현재 이 지역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변하였다. 도시형 첨단 IT업종인 디지털컨텐츠, 소프트웨어(SW),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지식기반산업 등이 들어서 있어 얼핏 화려한 겉모습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지친 삶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해서 체험관을 나오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1970년대의 구로공단을 삶을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2. 누구와 함께?

-당시의 삶을 사셨던 우리의 어르신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체험 장소.

3. 가는 방법은?

-가산디지털단지역1, 7호선 2번 출구. 버스 5537, 5616, 금천03, 금천05, 금천07

-주차시설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꼭 이용해야 함.

4. 감탄하는 점은?

-재현된 쪽방들의 내부 모습.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비하여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영상관, 쪽방 재현관

7. 주의할 점은?

-동네 한 주택을 리모델링한 곳이어서 자동차로 진입이 어렵다.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laborhouse.geumcheon.go.kr/

9. 관람 정보는?

-화~일 오전 10시~오후 5시(입장마감 4시 30분),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10. 총평 및 당부사항

-구로동단 노동자 삶을 기억하는 공간으로서 너무 초라하고 협소하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던 1985년 연계된 노동 운동의 시발점인 이정표로서의 체험관의 규모는 너무 아쉽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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