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가지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남극 역시 예외가 아닌데, 여기에는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완전히 얼어붙지 않는 호수가 존재한다. 남극 베스트폴드 힐스(Vestfold Hills) 지역에 있는 딥 레이크 (Deep Lake)가 그 장소로 남극 대륙 일부가 융기하면서 갇힌 바닷물이 수천 년이 지나면서 점차 수분이 증발하고 염도가 올라가서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 독특한 호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렇게 소금기가 많은 호수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극한 환경에 적응한 박테리아 가운데는 매우 독특한 생태를 지닌 것들이 많아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남극의 짠 호수에 사는 박테리아는 높은 염도는 물론 극도로 낮은 기온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매우 특별한 박테리아다.
최근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대학 연구팀은 이 호수에 사는 고세균의 일종인 할로아케이아(Haloarchaea)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을 발견해 이를 저널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했다. 이 박테리아의 표면에 작은 주머니 같은 구조물이 돋아나 있고 여기에 작은 DNA의 조각인 플라스미드(plasmid)가 존재했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플라스미드가 담긴 막 수포(membrane vesicles)가 마치 감염되듯이 다른 박테리아에 플라스미드를 전파한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이 플라스미드 자체가 막 수포를 형성하는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만약 이 작은 주머니와 플라스미드가 완전히 세포와 분리된다면 사실상 바이러스와 비슷한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주저자인 수잔 에드만 박사는 이는 바이러스의 기원이 플라스미드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기원이 세균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진화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세균에서 과학자들은 뜻하지 않게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단서를 얻은 셈이다.
사진=남극 베스트폴드 힐스 지역에 있는 딥 레이크(UNSW Sydney)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