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죽음의 권리로 불리기도 하는 존엄사 법은 임종을 앞둔 환자가 스스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거나 혹은 중단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며, 국내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부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2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을 23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실시하고, 내년 2월부터는 본격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존엄사는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약물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현재 논란인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유사하긴 하나,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지만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존엄사로 정의한다.
2015년 24세 벨기에 여성 로라는 어렸을 때부터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으며 생(生)을 거부해왔고, 벨기에 의료진은 그녀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신체에 특별한 질환이 없음에도 의료진에게 공개적으로 죽음을 요청한 이 여성의 사례는 존엄사가 아닌 안락사, 안락사 중에서도 적극적인 안락사에 속한다.
2008년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프랑스 남성 뱅상 랑베르의 아내와 주치의는 7년 동안 치료를 이어가다 랑베르의 상태에 호전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2015년 안락사를 요청했고 유럽인권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이며 논란이 일었다. 당시 랑베르의 아내가 선택한 것은 존엄사에 속한다.
현재 안락사와 존엄사 모두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이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프랑스는 극심한 찬반 내홍 끝에 지난해가 되어서야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만 제한적인 존엄사를 허용하는 일명 ‘웰다잉법’(Well-Dying) 법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를 원하는 이들에게 성지처럼 여겨지는 국가는 벨기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연령대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벨기에는 2014년 미성년자라도 자신의 현재 상태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여겨 나이제한 항목을 철폐하고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품격있는 죽음을 위해 벨기에를 방문하는 일명 ‘존엄사 여행’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스위스에는 죽을 권리를 호소하며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조력자살을 하는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가 있다. 일명 ‘자살 클리닉’이라고도 불리는 이 단체는 비영리기관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존엄사를 포함한 안락사를 허용한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말기 암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하는 조력자살의 방식이다. 지난 1월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2년~2017년 1월까지 디그니타스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 중 한국인도 포함돼 있으며, 그 수는 18명에 달했다. 독일인은 3223명으로 가장 많았다. 비용은 장례비용을 포함해 1000~14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몇 년 새 일부 국가에서는 존엄사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에도 꾸준한 반대 의견이 빗발치는 이유 중 하나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처럼 본인의 의지를 밝힐 수 없는 경우, 본인이 죽음을 원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대표 인물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안락사를 두고 “의사들은 생명의 존엄함을 존중해야 한다. 생명으로 장난치는 것은 창조주의 뜻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대에서든 현대에서든 ‘살인’이라는 말의 뜻은 똑같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인간의 생과 사는 어떤 시대에서도 신의 영역이라는 종교계의 입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인간은 언제 태어나고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재의 가치가 있고 그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의 하루가 과연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하루인가에 대해 답하는 것 역시 어렵다. 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예고 없이 다가오는 만큼, 한 번쯤은 이를 어떻게 맞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