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사태를 인지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커플의 사연이 알려졌다.
BBC 등 현지 언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 맨체스터에 살던 엘레나 마니게티와 라이언 오스본 커플은 지난 2월, 보트를 타고 대서양으로 훌쩍 떠났다. 이들은 아프리카 북서 해안의 카라니아 섬에서 여행을 시작해 카리브해까지 이동하며 약 한 달간 바다를 떠돌았다.
종종 육지에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여행 내내 외부와의 접촉을 원치 않았다. 가족 및 친구들과도 특별한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달 중순, 보트 하나로 전 세계 바다를 떠돌던 두 사람은 작은 섬에 발을 내딛었다가 휴대전화에 쏟아지는 메시지를 뒤늦게야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망망대해를 돌며 속세와 멀어져 있던 사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엘레나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 2월에 중국에서 심각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후 25일만에 카리브해에 도착할 때까지 그 전염병이 전 세계에 퍼진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는 대부분 바다 한가운데 떠 있어서 인터넷 사용이 제한적이었고, 가족과의 연락도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토 중 하나에 입항을 시도했다가, 그제서야 모든 국경이 닫히고 섬도 폐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처음에는 섬의 폐쇄가 단순히 섬 보호차원이라고만 생각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두 사람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그레나다라는 섬나라에 도착한 후에야 인터넷을 이용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된 지 3개월 여, 영국 등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지 약 한 달 만의 ‘깨달음’이었다.
두 사람을 더욱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이들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국가가 돼 있는 현실이었다. 엘레나는 “내 고향은 확진자가 가장 많은 룸바르디아 지역에 있고 아버지는 여전히 고향에 살고 계신다. 다행히 부모님과 가족은 감염을 피했지만 6주 넘게 봉쇄된 도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이 커플은 서인도 제도에 있는 그레나딘 제도의 세인트빈센트 섬에 머물고 있다. 세인트빈센트 섬 측은 당초 커플의 국적이 코로나19 최대 피해국가인 이탈리아라는 이유로 입항을 거절했지만, 여행 기간 동안 보트의 움직임을 기록한 GPS 데이터를 통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있는 지역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돼 무사히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커플은 “언제 세인트빈센트를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서 하루빨리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