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 후안 치프리안(81)은 지난달 29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첫 증상 발현 후 9일 만이었다. 평소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손녀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만 코로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모론에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가족은 모두 감염 예방에 철저했다. 코로나19 취약자가 많았기에 더 조심했다. 손녀는 “아버지는 암, 어머니는 당뇨로 투병 중이라 봉쇄령 해제 후에도 나는 직장에 복귀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야 하는 오빠와 삼촌은 격리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노인은 트럼프 열성 지지자였다. 트럼프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대통령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코로나는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심상찮은 증상이 나타난 건 지난달 20일.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던 노인이 코로나19로 쓰러지는 데는 단 9일이면 충분했다. 그 사이 할머니를 포함해 가족 중 7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모두 숨진 노인에게서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발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한 가정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셈이다. 화장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들려왔을 때 가족들은 분노했다. 손녀는 “애도 기간에 들려온 대통령 감염 소식에 가족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이제라도 대통령이 나서서 코로나19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가족 중 어머니는 “코로나19로 벌써 많은 사람이 직장이나 목숨을 잃었다. 의료진도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있다”면서 “이제 정치놀음은 그만하길 바란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입원 사흘만인 5일 완치도 되지 않은 상태로 퇴원한 후 백악관 도착해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코로나19가 당신을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라”는 영상 메시지도 남겼다.
다음 날에는 본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매년 10만 명이 독감으로 죽는다. 코로나19는 그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글을 올려 빈축을 샀다. 현재 트위터는 해당 글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인 상태이며, 페이스북은 아예 삭제 조치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