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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남미] 베네수엘라 최대 공동묘지가 노숙인촌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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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최대 공동묘지가 노숙인촌으로 변해버렸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19세기에 조성돼 1982년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델수르 종합묘지가 바로 그곳이다. 묘지에는 갈 곳이 없는 노숙인들이 철판과 박스 등으로 움막을 짓고 살고 있다.

묘를 덮은 대리석은 침대나 식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5개월 딸을 둔 부부 잭슨(19)과 위니퍼(17)는 델수르 공동묘지의 터줏대감이다. 부부가 잠을 자는 침대는 묘를 덮고 있는 거대한 대리석 판이다. 묘 밑에는 시신 4구가 안장돼 있다.

친정도 이 묘지에 살고 있다는 위니퍼는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거의 평생 묘지에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숙인 대부분은 폐지를 줍거나 쓰레기를 뒤져 생계를 이어간다. 낮에는 묘지에서 나가 외부활동을 하다가 밤에는 묘지로 돌아가는 식이다. 노숙인들이 묘지를 떠나지 않는 건 길거리에 비해 안전한 데다 부수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약을 팔다가 붙잡혀 9년간 형을 살고 나온 뒤 공동묘지에 터를 잡았다는 루이스는 "아무래도 길에서 자는 것보다는 묘지에서 생활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이 기대하는 부수입에 대해 그는 "묘지를 지켜주는 대가로 유족들이 음식 등을 갖다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델수르 공동묘지는 도굴이 자주 발생한다. 19세기 묘지가 만들어진 후 사망한 가족을 묻으면서 귀금속 등 유품을 함께 묻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묘지 관계자는 "하룻밤에 묘 22기가 한꺼번에 도굴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이 잦다 보니 묘지에 둥지를 튼 노숙인들은 묘지기 역할을 하게 된다. 2년 전 재해로 집을 잃은 뒤 가족들과 함께 묘지로 들어왔다는 루이스(41)는 자신이 살고 있는 묘를 포함해 35개 묘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도굴을 당하지 않도록 관리해주면 유족들이 주말에 묘를 찾으면서 식품을 갖다주곤 한다"면서 "하루에 20개 식품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노숙인이 넘치는 데 대한 불만도 없진 않다. 야속하게 일찍 간 아들과 조카 셋, 시어머니 등 가족 5명이 델수르 묘지에 잠들어 있다는 한 여자시민은 "묘를 아예 부엌처럼 꾸며놓은 곳도 있다"면서 "묘지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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