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생태계를 x86 너머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90년대에도 윈도우 CE라는 임베디드 및 PDA용 OS를 개발했습니다. 윈도우 CE는 2000년에 들어와 윈도우 모바일로 진화했습니다. 이 운영체제들은 당연히 ARM 기반 CPU에서 돌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폰 이전 스마트폰 시장은 매우 협소했고 윈도우 모바일의 입지는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윈도우는 x86 생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PC가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던 기기였던 만큼 이게 큰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변화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보급된 2010년대 이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모바일을 윈도우 폰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시장의 주도권은 애플과 구글이 가져간 상태였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던 경로는 윈도우 OS가 깔린 PC였지만, 이제는 손안의 스마트폰이 더 일차적인 기기가 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이패드를 견제하기 위해 윈도우 RT처럼 ARM 태블릿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윈도우 OS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다시 실패하고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시 ARM 생태계에 윈도우 10을 이식한 것은 2017년이었습니다.(Windows 10 on ARM 혹은 WoA)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ARM 생태계의 맹주 가운데 하나인 퀄컴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ARM 생태계로 들어가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트북과 데스크톱까지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려는 퀄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RM용 윈도우 10을 내놓고 퀄컴은 스냅드래곤 835 모바일 PC 플랫폼을 선보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소비자들이 요구사항을 확실히 인지했습니다. ARM 기반 윈도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x86 용으로 나온 기존의 프로그램을 모두 구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윈도우 PC를 사는 이유는 당연히 윈도우 앱을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ARM 버전 윈도우 10에서는 에뮬레이터를 통해 x86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구동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본래 스마트폰과 태블릿 용으로 개발되어 전력 소모가 적고 모바일 네트워크 통합이 쉬운 스냅드래곤을 사용하면 훨씬 쓰임새가 높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 삼성, HP, ASUS 같은 주요 제조사에서 ARM 윈도우 10 노트북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반응은 솔직히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ARM 네이티브 윈도우 앱은 매우 빨랐지만, x86 앱은 속도가 느리고 호환성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사용이 불안정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가격도 저렴하지 않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과 퀄컴의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퀄컴은 2018년 스냅드래곤 8cx를 내놓은데 이어 보급형 모델인 스냅드래곤 7c를 내놓고 2020년에는 다시 5G 지원 기능을 더한 스냅드래곤 8cx Gen 2 5G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보급형 스냅드래곤 7c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냅드래곤 7c Gen 2를 공개하면서 스냅드래곤 ARM 윈도우 개발자 키트도 같이 선보였습니다. 아무래도 ARM 윈도우 네이티브 앱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보니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자들에게 키트를 보급하려는 것이 목적으로 보입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퀄컴의 도전 정신은 인정하지만, 애당초 윈도우와 ARM 모두 개방적인 생태계라 주도적인 기업이라도 해도 시장을 좌지우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애플의 ARM 생태계 이전입니다. 애플이 맥 CPU를 인텔에서 자체 설계한 ARM 프로세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을 때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의 거의 없었습니다.
퀄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몇 년 후 ARM 기반 윈도우 10 보급에 성공하면서 서서히 시장에 안착하게 될지 아니면 결국 과거처럼 실패를 거듭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윈도우 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반쪽짜리 윈도우 PC를 구입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호환성과 성능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