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최근 파라과이 파라나 델 산페드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주민들은 "인적이 드문 새벽에 학교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며 "학교 창고와 교장실에서 가장 먼저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신속하게 출동한 소방대가 불길을 잡는 데 성공한 덕분에 피해는 최소에 그쳤다. 교장실이 불에 타고 창고에 보관 중이던 학용품 세트가 재로 변했지만 다행히 교실 등 수업시설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소방대는 "새벽에 주민들이 불을 본 게 기적 같은 일"이라며 "신고가 늦었더라면 엄청난 피해가 났을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사는 "큰불로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가정형편에 어려운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한 문구세트가 모두 타버리는 바람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은 원한으로 인한 방화로 추정된다.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경고장이다.
손으로 쓴 경고장은 학교와 교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 형식이었다.
경고장은 "(지난해) 낙제점을 받아 유급을 당한 학생들이 모두 진급해야 한다"며 "그래야 앞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진급을 위해 재시험을 쳐서는 결코 안 된다며 낙제점을 받은 학생들을 무조건 진급시키라고 주문했다.
방화범이 남긴 게 확실해 보이는 경고장에는 철자법 오류가 여럿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유급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학교에 불을 지른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은 이에 대해 "기본적인 철자법을 틀린 것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성인들도 철자법 실수는 잦아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이 학교에서 유급을 당한 학생은 모두 18명이다. 경찰은 "정황상 진급에 실패한 18명 학생과 학부모 등 주변 인물들이 유력하게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다수 남미 국가처럼 파라과이 중고등학교에는 유급제가 있다. 일정 수 이상의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학년 진급이 불허된다.
유급을 당한 학생들이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파라과이 마리아노 로케 알론소 지방에서 발생한 학교 화재사건도 유급에 불만을 품은 학생의 소행이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