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스위스 남서부 발레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론 빙하에 커다란 흰색 담요가 펼쳐졌다. 얼핏 만년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담요는 사실 해빙을 막는 단열 재질의 반사천이었다.
알프스 산맥 해발 2200m 이상에 자리한 론 빙하는 7㎞ 길이의 만년빙으로 유명한 스위스 관광 명소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1856년 이후 350m 두께의 얼음이 녹아 없어졌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에만 40m 두께의 얼음이 사라졌다.
스위스는 빙하 유실을 막기 위해 2010년부터 매해 여름 론 빙하를 하얀 담요로 덮기 시작했다. 냉기를 가두고 열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여 해빙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덕분에 해빙량은 50~70% 줄었지만, 빙하의 감소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고 있다. 현지 빙하학자ㅑ 안드레 바우더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6~8m 두께의 얼음이 녹아 없어지고 있다. 2100년이면 스위스 모든 빙하가 녹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매년 한 장에 6만 스위스프랑(약 6800만원)이 넘는 담요로 거대한 빙하 곳곳을 덮으려니 지출이 상당하다.
담요 덮기 같은 임시변통이 언제까지 통할지도 미지수다. 알프스 일부에선 ‘빙하 블러드’ 같은 현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프랑스 그르노블국립과학연구센터 과학자들은 알프스 브레방산(해발 2500m)이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붉은색으로 변한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브레방산에서 눈과 흙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바다나 호수에서 발견되는 특정 미세조류가 눈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 유입이 증가하면서 산구아나 같은 미세조류가 번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세조류가 붉은색을 띤 이유로는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를 꼽았다. 눈 속 미세조류가 자외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와 같은 붉은색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축적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미세조류로 덮인 빙하도 붉게 보인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했다.
문제는 빙하 블러드 현상이 다시 기후변화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만년설은 햇빛을 반사하는데, 미세조류로 인해 붉어진 만년설은 햇빛을 덜 반사해 해빙을 가속화한다. 결국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기후변화의 결과물인 빙하 블러드가 동시에 기후변화를 더 심화시켜 악순화의 고리가 되는 셈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이런 빙하 블러드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며, 이로 인해 주변 생태계도 약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정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