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정부는 이날 리가 중심 공원에 있는 옛 소련 시절 기념비를 해체했다. 약 80m 높이 기념탑이 쓰러지면서 기념탑을 둘러싸고 있던 호수에선 거대 물보라가 일었고, 멀찌감치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기념탑은 1985년 옛 소련이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한 붉은군대의 승리와 라트비아의 해방을 기념하고자 세웠다. 각기 높이가 다른 콘크리트 첨탑 5개 위에 소련을 상징하는 별 3개가 달렸다. 매년 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러시아의 ‘전승절)이면 기념탑 앞은 헌화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한 라트비아가 2003년과 2004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등 친서방국으로 돌아서면서 기념탑 존속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기념탑 해체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침공에 반발해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도 중단한 라트비아는 5월 기념탑을 없애기로 확정했다. 러시아계 주민 반발이 있었지만 라트비아 의회는 해체 안건을 통과시켰다. 결국, 옛 소련의 잔재는 라트비아 독립 31년 만에 거대 물보라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라트비아 외교부는 트위터에 “라트비아는 이로써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닫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게 됐다”고 자평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