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남미] 범죄 문제 생방송하던 여기자 권총강도에 털릴 뻔

범죄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에콰도르에서 여기자가 생방송 중 권총강도를 만났다. 여기자는 멘트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에콰도르의 주민들은 “국가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 보도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은 25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에콰도르의 대도시 과야킬의 모누멘탈 축구장 주변에서 발생했다. 모누멘탈 축구장에선 오는 30일 남미 프로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리베르타도르컵 대회 결승이 열릴 예정이다. 현지 언론매체 텔레아마소나스의 여기자 바네사 로블레스는 결승전을 앞둔 축구장 주변의 치안상황을 전하기 위해 생방송 중이었다.

로블레스 기자가 경찰이 계획 중인 치안작전을 설명하고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탄 괴한 2명이 접근했다. 복면을 한 두 사람은 권총강도였다. 2인조 강도는 기자에게 다가서면서 총을 꺼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선 겁에 질려 꼼짝없이 당하는 게 보통이지만 여기자 로블레스는 “생방송 중이예요. 생방송인데 우리에게 강도짓을 하시려고요?”라고 물었다. 마이크를 든 여기자의 멘트는 생생하게 방송에 나갔다.

그때 카메라기자는 용감하게 카메라를 2인조 강도에 초점을 맞췄다. 움찔한 강도들은 총을 주머니에 넣더니 줄행랑쳤다. 마침 강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 쪽에서 경찰관 1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기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자는 “강도들이에요. 방금 우리를 털려고 했어요”라고 고함쳤다. 경찰은 오토바이 방향을 틀어 추격에 나섰지만 검거엔 실패했다.

로블레스 기자는 “사람들이 외출할 때 갖는 공포,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느끼는 두려움을 우리가 직접 체험했다”며 “치안이 불안해도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외신엔 교도소 폭동 등 대형 사건만 보도되고 있지만 에콰도르는 범죄증가로 골치를 앓고 있다. 날치기, 강도, 절도, 살인 등 사건이 끊이지 않아 주민들은 불안에 떤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살인율이다. 2017년 에콰도르의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은 5.6건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살인율은 14.4건으로 폭증했다. 지난해 5월 기예르모 라소 정부가 출범한 뒤 살인사건은 더욱 늘고 있어 올해 살인율은 21~22건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지 언론은 “예상대로 라면 에콰도르의 살인율은 중남미 평균 18건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며 “중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고 보도했다.

손영식 남미 통신원 voni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