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불과 한 달 전 우크라이나를 비밀리에 방문한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의 암살 시도를 주의하라고 당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에서 이 같은 일화가 공개된 사례는 이례적인데, 러시아의 음모를 간파한 자국의 정보력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비서실장 역사를 다룬 책 ‘게이트키퍼’의 저자 크리스 휘플이 17일 출간한 신간 ‘인생의 싸움, 조 바이든 백악관 내부’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미국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가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번스 CIA 국장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할 수 있다는 미국 측 생각을 전달하자 “이유 없이 감행하진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고는 우크라이나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하는 데 익숙하다고 강조했다.
휘플은 저서에서 “번스는 젤렌스키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로 현실을 알리러 왔다. 러시아 특수부대가 젤렌스키 당신을 죽이러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은 즉시 젤렌스키의 관심을 끌었다”면서 “젤렌스키는 이 말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고 서술했다.
실제 러시아는 다음 달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명목 아래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군사적 충돌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 침공 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12차례 이상 암살 시도를 당했다고 밝혔다.
휘플은 “번스가 가져온 정보는 우크라이나군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한 최소 두 번의 러시아 측 암살 시도를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 만큼 상세했다”고 설명했다.
번스 국장은 젤렌스키 대통령 집무실 방문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에 대한 청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덕분에 젤렌스키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쪽에 있는 안토노프 공항을 공격하고 그곳을 집결지로 사용해 키이우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사전에 알 수 있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침공 후 핵심 우방국인 미국 측으로부터 수십억 달러 상당의 안보 지원 외에도 자국 군대를 지원할 중요 정보를 지속해서 제공받아왔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