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케이신문 등 다수의 현지 언론은 23일(이하 현지시간) “기시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샤모지(밥주걱)를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7개국(G7) 회원국 정상 가운데 그간 유일하게 우크라이나를 찾지 않았던 기시다 총리는 21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이 끝난 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건넨 선물은 ‘샤모지’라 불리는 약 50㎝ 길이의 나무 주걱으로 알려졌다.
‘필승’(必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샤모지는 길조를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기시다 총리의 고향이기도 한 히로시마의 특산품으로, 학생들이 야구나 축구 경기에서 응원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행운과 복을 주걱으로 퍼 담는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특히 과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당시, 일본 병사들이 승리를 빌며 주걱을 히로시마의 신사에 바치면서 유명해졌다.
닛칸스포츠는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은 러시아에 승리했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에 의해 불합리한 침공을 계속 받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필승 주걱이 가지는 유래,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견해”가 정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역할을 ‘평화’ 행하는 것…‘필승’은 부적절한 선물”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시다 총리의 선물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4일 기시다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외교로서 현지 특산품을 가져가는 일은 자주 있다”며 샤모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이시가키 노리코 참의원은 “(전쟁은) 선거나 스포츠가 아니다. 일본의 역할은 어떻게 평화를 행햐느냐다”라면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데, 그 전장에서 ‘필승’을 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난했다.
이즈미 겐타 입헌민주당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선물에 대해 “긴박한 외교 중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중요한 회담에서 왜 고향(히로시마)을 홍보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선물의) 의미를 내가 직접 말씀드리는 것은 삼가겠다”면서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격려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선물(샤모지)을 선택했다”면서 “샤모지 외에도 종이학을 모티브로 만든 램프 등을 선물했다”고 전했다.
샤모지에 남다른 사랑 과시해 온 기시다 총리기시다 총리가 샤모지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 국회 내 기시다 총리의 사무실에도 성인 어깨 높이까지 오는 거대한 크기의 샤모지가 장식품으로 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기시다 총리가 일본 자민당 총재에 출마하면서 받은 선물이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이보다 작은 크기의 샤모지를 선물한 것으로 보인다.
외무상을 지내던 2015년 3월, 당시 윤병세 외교장관과 회담을 한 이후에도 샤모지를 선물했다. 당시에는 필승의 의미가 아닌,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선물이 일본의 고유 문화인 '종이학 1000마리'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종이학 1000마리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아픈 이들의 회복을 앞당겨진다고 여겨지는 선물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에서 종이학을 접어 보내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물이나 의류 등 생필품도 부족한 지진 현장에 종이학을 보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진 바 있다.
전쟁중인 국가에 승리를 기원하는 기념품을 선물할 수는 있으나, 샤모지가 종이학 1000마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곤란할 수 있는 선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