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수많은 땀과 눈물의 결정체로 크나큰 성과를 얻어낼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가슴 찡함을 느낀다. 더구나 보통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경우에는 더욱 큰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병마와 싸워가면서 값진 도전에 나선 이들은 더 따뜻한 시선을 받을 자격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올림피안들의 도전기를 들여다 봤다.
◇리처즈. 희귀병 베체트병을 극복하고 육상 여자 400m 정상에 도전한다
미국 여자육상대표 사냐 리처즈(23)는 지난해 베체트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리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베체트병(behcet’s disease)은 만성 염증성 질환을 말하며 주로 혈관에 손상을 주는 병이지만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자메이카 태생으로 12세때 미국으로 건너와 육상 스타로 발돋음하던 그는 지난해 베체트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입에 궤양 증상이 생기고 고통을 수반하는 피부 장애를 겪어왔던 것이 결국 베체트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06년 월드컵에서 여자 200m와 400m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선수’로 선정될 정도로 촉망받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러나 리처즈는 베이징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고 병마와 싸웠다. 그는 최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말부터 발작적인 통증은 느끼지 않고 있다. 훈련을 할 때도 감도 좋고 회복 속도도 나아졌다. 하지만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정도로 회복된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는 리처즈는 “베이징올림픽 400m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육상 여자 400m 결승은 19일 벌어진다.
◇혈액병을 이겨낸 펜싱의 키스 스마트
2004 아테네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은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키스 스마트(30)는 지난 3월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TP)‘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혈액의 혈소판이 갑자기 줄어드는 희귀병이다.
담당 의사는 몸의 피를 모두 뺀 뒤 새로운 피를 수혈받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올림픽 출전의 꿈을 포기할 수 없기에 거절했다. 대신 집중적인 약물치료를 받았다.
스마트는 올림픽이 개막된 뒤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의사는 비행기에도 타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베이징에 왔다”고 말했다.
희귀병과 싸우고 있던 지난 5월에는 모친 엘리자베스 스마트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스마트의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그는 “4년전 아테네에서 금메달을 놓쳤을 때만 해도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인생에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머니와 한시간이라도 시간을 더 보낼 수만 있다면 운동으로 이룬 성과를 포기할 수도 있다”며 애달픈 사모곡을 불렀다.
◇고환암과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한 수영의 에릭 섄토
수영에서도 고환암을 이겨낸 ‘제2의 암스트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남자 수영의 에릭 섄토(24)가 고환암에도 불구하고 12일 평영 200m에 출전했다. 섄토는 올해 미국대표 선발전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선발전을 통과하면서 베이징에 갈 자격을 얻게 됐지만 그때부터 또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가족과 의사는 올림픽 출전보다 수술을 받을 것을 권했지만 그는 고심끝에 베이징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전 세계에서 암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서 격려가 쇄도하면서 섄토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최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암을 앓고 있는 어떤 이들은 나를 통해 영감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보내준 메시지가 오히려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국뿐만 아니라 암과 투병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위해 베이징에 왔다. 그들과 함께 수영하겠다”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암과 싸우는 다른 올림픽 패밀리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 문형철(50) 감독은 지난해 12월 갑상생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올해 1월 암절제 수술. 4월엔 항암치료를 받았고. 훈련지도 일정 때문에 방사선 치료는 올림픽이 끝난 뒤인 11월로 미룬 상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호주 유도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마리아 페클리(36)는 아들 에릭이 시스틴 축적증이란 희귀병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다.
아미노산 생성을 막아 신부전을 일으키는 병으로 전 세계에 2000명밖에 걸리지 않는 희귀병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5위로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어머니로서 아들을 돌보겠다며.
미국의 아줌마 수영선수 다라 토레스(41)는 스승이 암 투병 중이다.
몇주 전 미하엘 로베르그(58) 코치가 암 판정을 받고 미국에 머물게 돼 베이징에 함께 오지 못했다. 여자 자유형 400m 계영에서 은메달을 시작으로 메달사냥에 본격 뛰어든 모습이다. 그는 이번 메달로 84. 88. 92. 2000년 대회에 이어 올림픽 5개 대회 메달이란 진기록도 세워가고 있다.
이밖에 역도 여자 53㎏급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의 윤진희도 ‘엄마같은 사부’ 김동희 여자역도대표팀 코치에게 메달의 영광을 바쳤다. 고 김코치는 지난 4월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윤진희의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조병모·위원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