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서운 찬바람이 할퀴어 내는 ‘시린 추억’을 간직한 이들일 것이다.
불현듯 흩날린 눈송이가 홀로 걷던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서게 했다면, 잊고 지낸 어느 날의 기억을 문득 떠올리게 한 ‘잔혹함’ 때문일 것이다.
가슴 속 어딘가 콕 박혀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겨울만 되면 ‘잊고 지낸 추억’을 간지럽히던 따뜻한 목소리가 있다. 96년, 토이의 객원보컬로 ‘순수와 감성’을 노래한지 14년. 김연우(37·본명 김학철)가 돌아왔다.
”변한건 없니 날 웃게 했던 예전 그 말투도 여전히 그대로니…(토이 김연우 ‘여전히 아름다운지’ 中), 아프진 않니 많이 걱정돼. 행복하겠지만 너를 위해 기도할게. 기억해 다른 사람 만나도.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토이 김연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中 )
하얀 겨울 밤, 소복히 쌓인 눈 위로 발걸음을 옮길 때의 ‘뽀독뽀독’ 소리처럼, 맑고 애잔한 그의 음색이 귓가에서 심장까지 또렷이 와닿는다. 김연우만의 목소리다.
◆ 수면 위로 올라온 음악세계 “2009년엔 부지런해질래요”
김연우가 3년간의 오랜 기다림을 깨고 싱글앨범 ‘지금 만나러 갑니다’(I’ll give my life with you)로 컴백했다. 거리 곳곳 마다 울려 퍼지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가 이 겨울 외로운 넋두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연인’, ‘이별 택시’, ‘사랑한다는 흔한 말’ 등 1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주옥 같은 명곡을 남긴 김연우는 그간 좀처럼 방송 활동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TV보다는 라디오와 공연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전하던 그가 최근 잦은 ‘방송 외출’로 반가운 얼굴을 비치고 있다. 각 지상파 음악방송과 더불어 지난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출연, 김연우는 그간 못다한 음악 이야기와 함께 신곡 ‘사랑한다 안한다’를 들려주며 한층 음악팬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3년 만이죠? 정규 4집을 준비하는 가운데 좋은 2곡이 있어 싱글로 먼저 선보이게 됐어요. 그럴 이유도 없었는데… 그간 너무 숨어서 음악을 들려드렸던 것 같아요. 제 목소리는 아셔도 이미지는 모르시더라고요. 아마 김범수 씨보다 모를 껄요?(웃음) 2009년에는 보다 부지런해져서, 보다 좋은 곡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바람입니다.”
◆ 김연우표 발라드? ‘기교’ 아닌 ‘솔직함’이 매력
10여년이 지나도록 ‘발라드 명곡’으로 꼽히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일명 ‘김연우표 발라드’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현재 호원대와 숭실대 평생교육원에 보컬 강사로도 출강하고 있는 김연우는 토이 시절 부터 자신의 노래가 변치 않는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기교’가 아닌 ‘솔직함’을 언급했다.
”화려한 기교에 치중된 발라드는 ‘노래 실력을 뽐내는’ 가수 밖에 되지 못해요.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단 3-4분 동안이라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서 이야기를 전하듯 솔직해져야 해요.
일명 소몰이 창법이 발라드의 시류를 이끌었던 때도 있었지만 한시적이었죠. 결국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곡이거든요. 음악은 솔직해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음악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이죠.”
김연우의 신곡 ‘사랑한다 안한다’의 가사도 사랑과 이별의 추억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꽃잎 떼기’를 소재화했다.
’사랑한다 안한다. 사랑한다 안한다. 꽃잎을 한 장씩 떼어 물어보지만. 바람에 시들어 버린 모두다 흩어져버린 꽃잎이 우리의 모습만 같아.(사랑한다 안한다 가사 中)’
”이별 노래와 저는 인연이 깊나봐요. 슬픈 노래는 그만 부르고 싶다고 인터뷰마다 말하곤 했는데 그래도 가장 ‘김연우스러운’ 느낌의 곡이라는 평이 나쁘지 않네요. 앞으로 애잔한 느낌은 살리되, 너무 느린 곡은 줄여가려 해요. 좀더 세련된 사운드의 감성터치가 돋보이는 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 ”토이는 내 고향집, 늘 감사해”
김연우에게 있어 그의 음악적 모태가 된 ‘토이 음악’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토이’의 객원싱어로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발표한지 14년, 그의 음악을 토이의 연장선상으로 평가하는 일부 시선에 대해 내심 서운하지 않은지를 묻자 김연우는 “토이는 내 고향집과 같다.”는 답변과 함께 미소 지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제가 태어난 고향집’ 정도가 맞겠네요. 희열이는 제 평생의 음악 동반자고요. 토이 음악은 제 음악의 한 부분이자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유)희열이와의 인연은 늘 감사해요. 그렇게 음악적 색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데뷔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지금도 음악활동을 하다가 힘들때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요. 토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토이’라는 이름은 제게 고마운 추억이에요. 저 역시 멈춰져 있는 성격이 아니니 ‘토이 밖의 김연우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로 작용되기도 했죠.”
’토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대다수 솔로가수 김연우 음악의 ‘잔잔한 변화’에도 호의적이다.
”어쩌다 보니 제가 이별노래 전문 가수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제 이번 앨범의 첫 트랙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상큼한 변화가 느껴지실 거예요. 품앗이로 나선 타블로의 감각적인 랩핑과 제 노래가 감각적으로 잘 어우러졌어요.
4집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에 한 두번 정도 좋은 싱글 앨범이 준비된다면 보다 자주 선보여 드릴게요. 음악활동을 계속해 오면서 가장 뿌듯한 점은 제 유일한 재주로 다른 이에게 ‘선물이 되는 음악’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지고 있는 재주가 이것 뿐이라…(웃음) ‘보컬 선생님’으로, ‘대중 가수’로 휴식과 추억이 되는 음악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