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대형 방송사고가 났다. 피해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다. 가해자(?)는 기업인 출신인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다.
사고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의 2위 지상파 방송인 칠레비젼의 메인뉴스 시간에 터졌다. ‘협잡배’라는 별명이 붙은 현금지급기(ATM) 전문털이단 체포 소식을 전할 때였다.
아나운서가 현금지급기만 털어온 절도단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뉴스를 읽어내려가는데 화면에는 엉뚱하게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야당 관계자들과 만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화면을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대본(?)을 읽어내려갔다.
”(화면에 나오는) ‘협잡배’들은 현금지급기를 전문적으로 털어온 전문절도범들로 이렇게 훔친 돈을 펑펑 써대면서 극도의 사치를 누려왔다.” “명품 옷으로 치장하고 유럽여행을 다녔다.” “범죄계의 대선배들에겐 신앙에 가까운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졸지에 대통령은 ATM 전문털이단 두목, 야당 관계자들은 조직원으로 둔갑한 셈이다.
아나운서가 대형사고가 난 걸 알게 된 건 이미 뉴스를 다 읽어버린 후였다. 아나운서는 당황한 목소리로 “화면에 장면이 실수로 나간 것 같다. 잠시 후에 화면에 해당하는 뉴스를 다시 내보내겠다.”고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사고는 공교롭게도 피녜라 대통령이 칠레비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주에 터져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대통령이 지상파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방송사를 매각하고 국정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자 피녜라 대통령은 지난 19일 칠레비전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기업인 출신인 피녜라 대통령은 22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세계 400대 거부다.
한편 문제의 방송사고는 TV캡쳐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랐지만 저작권을 가진 칠레비전의 요청으로 지금은 공유가 중단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