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퀄컴은 모바일 시대의 인텔로 불리며 시가 총액이 인텔을 넘어선 적도 있었습니다. 스냅드래곤 800과 그 형제들은 고급형 스마트폰에는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이었습니다. 그래서 퀄컴이 차세대 AP인 810을 준비할 때만 해도 시장의 기대는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스냅드래곤 810과 퀄컴이 거둔 성적은 초라했습니다. 64bit를 지원하는 새로운 CPU인 Cortex A57/53 (각각 4개씩)에 고성능 그래픽 코어인 아드레노 430(Adreno 430)까지 갖췄지만, 정작 모바일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인 저전력, 저발열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스냅드래곤 810은 발열 및 스로틀링(발열을 낮추기 위해 클럭을 낮추는 것) 이슈에 휘말리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스냅드래곤 810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올해 초 등장한 삼성의 14nm 공정 Exynos 7420 프로세서였습니다. 더 미세 공정을 채택하고 과도한 욕심을 버린 덕분에 갤럭시 S6와 갤럭시 노트 5 등 삼성의 주력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충분한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퀄컴의 칩은 사용하지 않았죠.
그리고 자체적으로 AP를 만들지 않는 LG전자도 자신의 주력 제품인 G4나 V10에 810 대신 이보다 하나 아래 단계의 모델인 808을 채택했습니다. 더 저렴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비록 일부 스마트폰들이 810을 채택하긴 했지만, 과거 800시리즈의 영광을 생각하면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미디어텍 같은 회사들이 저렴한 AP를 내놓고 보급형 시장에서 퀄컴을 빠르게 추격하면서 퀄컴의 실적은 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스냅드래곤 820. 재기의 날개 펼칠까?
IT 업계는 변화가 빠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퀄컴 역시 그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 퀄컴의 운명은 차기 고성능 프로세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퀄컴 재기의 중책을 맡은 차세대 프로세서는 바로 스냅드래곤 820입니다. 사실상 퀄컴이 사운을 걸고 개발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냅드래곤 820은 다시 자체적인 CPU로 돌아오게 됩니다. 카이로(Kyro)라 명명된 이 CPU 코어는 64bit ARMv8-A 기반 CPU로 아직 구체적인 성능은 알 수 없지만, 전력 대 성능비가 크게 개선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공정 자체가 더 미세한 14nm FinFET으로 이전한 만큼 전력 대 성능비 개선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픽 코어 역시 이전보다 40% 정도 성능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전력 소모는 최대 40% 정도 줄었다는 것이 퀄컴의 설명입니다. 성능 향상과 전력 소모 감소의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추구한 것은 심각한 발열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울트라 HD 혹은 4K(3840x2160) 디스플레이 지원 역시 초당 60프레임 지원과 HDMI 2.0 지원할 수 있으며 4K/60프레임 H.265/HEVC 인코딩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해 초고해상도 영상 감상이 편해졌다는 이야기죠.
통신 전문 기업답게 LTE 모뎀의 성능도 대폭 개선됩니다. X12 무선 모뎀은 LTE Advanced Cat. 12 다운링크와 Cat. 13 업링크를 동시에 지원합니다. 이 말은 600Mbps 다운로드와 150Mbps 업로드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Wi-Fi 802.11ad 지원이 추가되는 데, 이 새로운 와이파이 규격은 와이기그 (WiGig: Wireless Gigabit Alliance)라고 불리며 60GHz라는 매우 높은 주파수를 사용합니다. 덕분에 7Gbit/s라는 매우 빠른 전송 속도를 지닙니다. 물론 아직 이를 지원하는 기기가 거의 없어서 당장에는 기 기능을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미래를 위한 포석이겠죠.
- 과연 미래는?
여기까지 들으면 퀄컴이 확실히 스냅드래곤 820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나올지는 역시 실제 제품이 나와봐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엔지니어링 샘플 및 개발용 보드 벤치라고 주장되는 결과들이 나오긴 했지만 진위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발열과 성능의 균형을 잘 잡는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사실 최근 어려움을 겪긴 했어도 아직 퀄컴은 모바일 프로세서 부분에서 강자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것은 스냅드래곤 820에 추가될 여러 기능 중 일부에 불과하죠. 퀄컴은 그만큼 수많은 특허는 물론 독보적인 기술력이 만만치 않은 회사입니다. 그래도 위협 요소는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차기 엑시노스 프로세서도 위협적이지만, 사실 그 이상 위협적인 것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는 미디어텍 같은 신흥 강자입니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820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되찾는 것은 물론 이들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가격 경쟁력 있는 중급 및 보급형 모델에도 힘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2016년은 2015년과 마찬가지로 모바일 프로세서 기업들의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고든 정 통신원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