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스트레스 제로'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성적, 취업, 연애, 육아, 주거 등 고민과 걱정, 불안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삶은 스트레스와 결코 떼기 어려운 환경이다. 최근 TV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라는 코너를 마련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나쁜 기억이나 고민을 해결하는 '힐링법'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상담을 통한 나쁜 기억 혹은 트라우마 극복 방법 외에도, 상담과 비슷한 효과가 있으나 더욱 과학적인 방법으로 ‘안구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일명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라 부르는 이 치료법은 1987년 정신건강을 연구해온 미국 프랜신 샤피로 박사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으로 불린다.
이 치료법은 나쁜 기억으로 분류되는 외상성 스트레스장애나 트라우마 같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과학적 방법으로, 간단한 안구 동작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눈동자를 돌려 왼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오른쪽을 바라보는 간단한 동작을 25~30번 정도만 반복해도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줄어들고 평안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전문가들은 안구를 움직이는 것이 수면 중 안구운동인 REM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꿈속의 일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 하지만, 꿈을 꾸는 동안의 REM 과정을 거친 뒤 꿈에서 깨어나면 꿈을 그저 꿈일 뿐인 것으로 치부하고 이를 떨쳐내는 것이 쉬워진다. 그것이 비록 기분 좋은 꿈이든, 악몽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EMDR이 일종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 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작업기억은 정보들을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각종 인지적 과정을 계획하고 순서 지으며 실제로 수행하는 기억처리 과정이다. 눈동자를 움직이는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나쁜 기억에 집중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영국 EMDR협회의 로빈 로지 박사는 “기억은 이전의 경험과 앞으로의 추측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중 특히 나쁜 경험에 대한 기억은 뇌가 ‘재처리’ 과정을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자꾸만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꿈을 통해 회상되기도 한다. 이것이 결국 트라우마로 자리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트라우마가 될 만한 사건을 겪은 사람의 뇌를 스캐닝해보면 소리나 감각, 냄새의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보통사람에 비해 활성화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EMDR 치료법을 통해 지나치게 활성화 되어 있는 나쁜 기억의 반응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치료법은 영국 공공의료서비스인 NHS 또는 영국 국방부에서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돕는 방법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EMDR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스스로 떠올려야 하는 과정 때문에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자가 치료보다는 전문가와 협력하는 것이 바람집하다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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