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싫은 상황이겠지만, 오징어, 문어, 갑오징어를 포함한 연체동물이 단단한 내부 골격이나 혹은 껍질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쥐라기에는 이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오징어나 문어는 연체동물에서도 두족류(Cephalopod), 초형아강(Coleoidea)에 속한다. 그 기원은 고생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생물체다. 하지만 처음에는 지금처럼 번영을 누린 생명체는 아니었다.
고생대부터 두족류의 대표주자는 단단한 껍질을 지닌 암모나이트류로 백악기 말까지 존재했다. 암모나이트의 단단한 껍질은 몸을 지키는 든든한 방어수단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따라서 중요한 포식자인 어류가 점차 빠르게 진화하던 중생대 중반의 바다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1억 6600만 년 전 살았던 벨렘모테우티스 앤티쿠스 (Belemnoteuthis antiquus) 영락없는 오징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부에 단단한 내골격 (internal skeleton)을 지녀 현재의 오징어와 다른 구조를 지닌 생명체다. 다만 벨렘모테우티스는 먹물 주머니까지 갖추고 있어 현생 오징어류의 가까운 친척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쥐라기를 지나면서 멸종된다. 당시 바다에서 점차 빠르고 민첩한 어류가 진화하면서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것이 이유로 생각된다.
브리스톨 대학의 과학자들은 현생 두족류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오징어와 문어류가 현재처럼 진화하게 된 것이 1억6000만 년 전에서 1억 년 전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의 리더인 알 테너 (Al Tanner)에 의하면 진화적 군비 경쟁의 결과 단단한 골격과 껍질이 사라지고 대신 빠르고 유연한 몸을 지닌 현대적 두족류가 진화했다. 일단 빨리 도망치는 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단한 껍질을 지닌 두족류는 앵무조개 같은 일부 종을 제외하고 중생대 이후 모두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현재 보는 오징어와 문어의 모습은 치열한 삶의 경쟁을 이겨낸 후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빠르고 민첩한 몸과 매우 유연하면서도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몸을 진화해 지금의 험한 세상에서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