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에는 현재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생물들이 많았다. 삼엽충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생물이지만, 그 외에도 괴상하게 생긴 수중 생물들이 복잡한 생태계를 구성했다. 흔히 바다 전갈이라고 불리는 유립테루스(Eurypterid, 광익류) 역시 그중 하나다.
유립테루스는 고생대의 바다와 호수에 살았던 거대 절지동물로 전갈 같은 외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미 쪽에 더 가까운 그룹으로 생각되고 있다. 고생대 말에 모두 멸종했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종이 200종이 넘을 만큼 당시에는 크게 번성했던 생물이다. 대부분의 경우 몸길이 20cm 이하지만, 가장 큰 종의 경우 몸길이가 2.5m에 달해 역사상 가장 큰 절지동물이기도 하다.
유립테루스는 12개의 체절로 되어있으며 앞에는 뒤로 갈수록 커지는 다리가 존재한다. 유립테루스는 현재의 전갈이나 거미와는 달리 수중 생활을 했으므로 다리의 용도는 걷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잡거나 헤엄치는 데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뾰족한 꼬리의 용도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다. 바다나 호수에서 살았던 동물이라면 보통 크고 넓은 꼬리를 지녔을 법한데, 왜 뾰족한 꼬리가 있을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현재의 전갈처럼 독침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석에는 독침이 있었던 증거가 전혀 없다.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스콧 퍼슨스가 이끄는 연구팀은 4억 3000만년 전 살았던 유립테루스의 일종인 슬리모니아 아쿠미나타(Slimonia acuminata)의 화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독침은 없지만 이 꼬리가 쉽게 구부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복원도에서 보듯이 톱니 같은 표면을 가지고 있어 먹이를 고정하거나 붙잡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따라서 이들은 유립테루스의 꼬리가 먹이를 붙잡는 용도였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유립테루스가 생태계에서 상위 포식자였다는 점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복원도처럼 초기 어류의 조상을 거대 전갈처럼 생긴 유립테루스가 꼬리와 다리를 이용해서 잡아먹었을 가능성도 있다.(사진)
당시 초기 어류의 조상은 아직 작은 생명체에 불과했고 일단 붙잡히면 거의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관계는 데본기에 이르러 다양한 어류가 진화하면서 역전된다. 어류가 커지면서 상위 포식자가 되었고 유립테루스는 서서히 숫자가 줄면서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고생대 중반 이후 척추동물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은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여기서 양서류, 파충류, 조류, 공룡, 포유류 등 다양한 척추동물이 파생되어 인간까지 진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척추동물의 조상이 거대 바다 전갈의 다리와 꼬리를 피해 살아남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유립테루스도 무서운 사냥꾼이지만, 초기 어류의 조상 역시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던 셈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