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슬픈 청춘의 나루터…노량진

작성 2017.09.07 10:25 ㅣ 수정 2017.09.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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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에 있는 A학원의 한국사 강좌 현장 강의 모습. 노량진 유명 강사의 현장 수업을 듣기 위한 수험생들의 열기는 대단하다. (사진 = 전한길 한국사 제공)


“아무 일이나 허용되는 젊은이는 아무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100여 년 전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답답했던가.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천재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일찌감치 젊음이 지닌 함의(含意)를 대중에게 밝혀내고야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벽도 100년 전 그때의 아일랜드와 별반 다르지 않을 성 싶다.

통계청이 지난달 9일에 발표한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고공 행진을 넘어 우주로 넘어갈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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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디딜틈 없는 교실과는 달리 학원의 복도는 적막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통계 지표상으로만 보아도 흔히들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라 부르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실업률은 2017년 7월 기준으로 9.3%이며, 여기에 취업준비생과 단기 아르바이트생, 구직단념자를 포함시킨 실제 청년 체감실업률은 22.6%에 이른다. 말 그대로 4명 중 한 명은 매일 매일의 삶이 쓰디쓰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정부도 청년 실업자 구제에 총력을 쏟고 있는 형편이지만 실질적 효과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상황이다.

올 8월에 발표한 ‘일자리 추경’으로 증원하는 국가공무원 7급·9급 선발인원은 총 429명이고 지원자는 10만6186명이다. 평균경쟁률은 247.5 대 1이다. 간단히 말해서 40명 정원인 교실 6개에 든 수험생 중 한 명이 뽑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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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거리 구석 구석은 다양한 형태의 학원들이 취준생과 공시생의 요구를 충족한다.


그런데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이번 공무원 추가 공채 9급 고용노동부 일반 행정직 90명 모집에 4만4510명이 지원했으니 경쟁률은 494.6 대 1이다. 더 이상 할 말 잃게 만드는 숫자다.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젊은이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힘들다. 컵밥 가게만 바쁜 노량진 수험생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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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컵밥 가게. 수업 중간 중간에 한 끼를 때우기에 알맞아 노량진의 명물 중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노량진(鷺梁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나루터였다. 예나 지금이나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 중의 요지였으니 조선시대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조운은 여기에 다 모여 들었다.

또한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여기에서 제물포까지 이어졌으니 한국 철도 역사의 시발(始發)점으로도 의미 있는 지역이다.

여하튼 노량진은 서울의 부도심으로 나름 존재감을 나타내다가 본격적인 수험생 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도심지에 있던 261개 학원을 부도심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고 ‘대성학원’이 노량진으로 건너옴으로써 본격적인 수험생 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1980, 90년대는 명실 공히 대입 수험생들이 모여드는 서울의 최고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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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개된 수험생이 받은 쪽지. 숨도 제대도 쉬지 못하는(?) 수험생들의 현실이 슬프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이후인 1997년 말부터는 성인들이 중심인 수험생 거리로 바뀌었다.

공무원학원, 임용고시학원, 자격증학원, 경찰임용학원, 편입학원 등등이 생겨나면서 주로 20~30대 수험생들이 흔히들 ‘취준생’, ‘공시생’의 별칭으로 노량진 거리를 메우게 된다.

현재 노량진에는 성인고시학원만 61군데가 넘으며 이외 다른 학원들까지 합치면 130여개의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자연히 주변 고시원과 원룸 등의 월세도 신림동이나 대학가보다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전용면적 12.7㎡의 원룸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70만원은 줘야 할 정도로 물가가 만만치 않다.

거리의 컵밥 노점상, 뷔페식당, 편의점, 분식집, 스터디룸, 카페, 코인 노래방, 오락실 등등 노량진의 모든 골목들은 24시간 분주하다. 수많은 젊음이 스쳐 지나가듯 인생의 한 부분을 잠시만 머무르다 떠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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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수험생 거리는 우리 시대 젊음의 뒤안길이다. 무거운 가방을 멘 청춘의 뒷모습은 때때로 먹먹하다.


노량진 거리는 머물지 못하는 젊음이 만들어 낸, 그리하여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 시대 청춘의 나루터다.

<노량진 수험생 거리에 대한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거리야?

-우리 시대 청춘들의 뒤안길이다. 젊음을 이해하려면

2. 누구와 함께?

-당신이 20대를 맞는 젊음이라면 혼자.

3. 가는 방법은?

-수도권 전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4. 다른 거리와 다른 점은?

-한끼 2800원짜리 뷔페가 제공하는 음식의 양과 수준. 100원짜리 오락실과 노래방.

5. 방문할 의미가 있는 곳인지?

-서울의 또 다른 얼굴. 젊음이 머무르다 떠나는 인생의 나루터.

6. 가볼만한 곳은?

-노량진 수험생 거리의 골목 골목들. 컵밥 거리

7.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남짓

8. 홈페이지 주소는?

-노량진 1동 주민센터 http://www.dongjak.go.kr/dong/main/main.do?dongCode=01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노량진 수산시장. 국립묘지, 사육신묘, 노들나루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노량진은 삶이 가장 뜨거운 시기인 젊음이 머무르는 곳이다. 이 곳 거리를 분주히 지나다니는 추리닝 차림의 젊음에게 위안을.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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