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가 끝나다 - 영월 청령포

작성 2018.06.07 10:15 ㅣ 수정 2018.06.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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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에 위치한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있는 단종의 유배지로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된 곳이다


‘노산군이 세종이 임어하시던 자미당 창가의 난간을 보고 크게 탄식하기를, 할바마마께서 살아 계시다면 나에 대한 사랑이 어찌 적겠는가? 하니, 종자(從者)들이 모두 감격하여 울었다.’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1월 25일. 국편영인본 6책 712면&g

역사서에는 그를 노산군 혹은 홍위(弘暐), 또는 휘지(輝之)라고 불렀다 한다. 그는 왕이었지만 왕이 되지는 못했다. 그를 왕이라 부르는 자는 여지없이 가문의 뿌리까지 뽑히었다. 삶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불운한 소년, 조선의 제 6대 국왕인 단종(端宗. 1441-1457)이다.

단종은 출생부터가 남달랐다. 태종(1367-1462) 이후 적장자(嫡長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조선의 왕위 계승 원칙이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적장자로 즉위한 왕은 조선을 통틀어 고작 7명에 불과하였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단종은 적장자를 넘어 적장손 신분이었기에 더더욱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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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3년에 세워진 단묘재본부시유지비는 총 높이 162cm의 오석으로 영조대왕의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그가 태어나던 1441년에는 이미 아버지 문종(1414-1452)은 공식적으로 왕위 계승 세자 신분이었으며, 할아버지 세종(1397-1450)은 강력한 왕권을 지닌 국왕이었다. 또한 어머니인 현덕왕후 역시 비록 후궁으로 궁에 들어왔지만, 단종이 출생하던 시기에는 정실인 세자빈의 위치에 있었다. 한마디로 단종은 적자이면서 적손이었으며, 장자이면서 장손이었고, 이에 원손이자 세손, 세자라는 조선 왕조 계보상 가장 순수 혈통의 정통성을 제대로 갖춘 최초의 국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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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은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 거리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금표비가 청령포에는 세워져 있다


하지만 역사는, 권력은 하늘 끝을 찌르는 정통성이라는 명분보다는 칼을 쥘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에게 돌아간다. 단종이 12살 어린 나이에 국왕으로 오른 때인 1452년에는 이미 할아버지인 세종, 할머니 소헌왕후, 아버지 문종과 어머니 현덕왕후마저 세상을 떠나고 없던 시기였다. 수렴청정조차 해줄 왕실의 어른도 없는 미래를 짐작이나 한 듯 세종대왕과 문종은 서거 전에 김종서, 황보인 등에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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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이 직접 단을 쌓아 돌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망향탑. 이 곳에서 서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어린 임금인 단종을 앞에 내세운 채 조정대신을 대표하는 김종서, 황보인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주던 세종의 셋째 안평대군 세력에 반하여 위기의식을 느끼던 왕실 훈신 세력의 대표격인 세종의 둘째인 수양대군과 세종에게 왕위를 빼앗긴 양녕대군(1394-1462) 세력 등이 충돌하는 계유정난(1453)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수양대군은 1455년 세조가 되었고 모든 권력을 잡게 된다. 권력은 결코 자비가 없다. 단종의 죽음은 예고된 셈이었다.

1457년(세조 3년)에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영월에 위치한 청령포에 유배된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인 육육봉으로 막힌 이곳은 지금도 배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육지 속의 단절된 섬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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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결국 단종은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57년 10월 21일에 자결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임을 ‘당했다’라는 기록도 전해진다.

사육신 박팽년의 9세손 박경여가 권화와 함께 엮은 책인 장릉지(莊陵誌)에는 “세조 3년 10월 24일 유시(酉時)에 공생(貢生)이 활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冬乙旨)에 매장했다.”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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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는 육로로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다. 지금도 도선으로 건너가야 할 만큼 깊은 오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청령포는 이름난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복원한 단종어소를 비롯하여, 영조대왕의 친필이 음각된 단묘재본부시유지비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 단종 유배 이야기를 간직한 소나무인 관음송과 단종이 직접 쌓아올렸다고 전해지는 망향단 돌탑 등이 남아 당시의 슬픔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청령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영월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은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친목회

3. 가는 방법은?

-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 88번 지방도를 타도 되고, 38번 국도를 타고 가도 된다. 38번 국도가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 육지 속의 섬. 유배지로서의 최적지로 볼 수 있는 장소를 그 당시 어떻게 찾았을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최근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망향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닭강정 ‘일미강정식당’, 다슬기해장국 ‘성호식당’. 칼국수 ‘고향’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5,00500000,32&pageNo=5_2_1_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 별마로 천문대, 국가지정 명승 제 76호인 선돌.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조선의 가장 불운한 왕이었던 단종. 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오래된 슬픔을, 권력의 무자비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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