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최후의 보루’로 불리던 홍콩이공대(폴리테크닉) 진압으로 시위의 기세가 한풀 꺾인 가운데, 점심시간을 쪼개 거리로 나온 직장인들이 평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일(현지시간) 점심 시간 금융 중심가 센트럴과 쿤통, 타이쿠싱 거리에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행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마스크를 쓰고 행진에 나선 200여 명의 직장인들은 “시위대의 다섯가지 요구(송환법 완전 철회, 체포된 시위대 무조건 석방,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행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금융업 종사자 피터 리(26)는 “경찰에 대한 불만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특히 캐리 람의 태도와 젊은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의 방식에 화가 난다”면서 “평화적인 우리 직장인 시위대도 좀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찬이라는 이름의 직장인은 “구호만 외쳐서는 소용이 없을 것 같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20대 직장인은 “이공대에 갇힌 학생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현지언론은 검은색 스웨터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이 시위를 지켜보다 경찰의 수색을 받았다고 전했다. 수색을 당한 남성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경찰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경찰이 흥분했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경찰이 시위대를 과격분자로 왜곡하고 있다면서, 누군가가 이런 흐름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특히 시위에 참가한 직장인들은 경찰의 이공대 강경 진압에 대해 울분을 쏟아냈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피터 펑(30)은 “이공대에서 벌어진 일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면서 “가족사업을 하는데다 부모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구속될까 걱정이 되지만, 경찰의 권력 남용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홍콩과기대 2학년생 차우츠록(周梓樂) 씨가 시위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뒤, 홍콩 직장인들은 지난 11일부터 매일 점심시간마다 센트럴 랜드마크 빌딩 앞에서 ‘런치 위드 유’(점심 같이 먹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1일에도 12시 30분부터 센트럴을 포함한 홍콩 18개 전역에서 수백 명의 회사원들이 1시간 동안 점심 시위를 벌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한편 18일 밤 홍콩 경찰이 이공대 진압 작전에서 1000명이 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학교를 포위한 가운데, 아직 캠퍼스에 남아 있는 100여 명의 학생은 전기와 수도가 끊겨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먹을 것도 떨어지고 쓰레기가 널부러져 위생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탈출 계획을 도모했던 초반과 달리 소규모로 움직이며 학교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