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한 대학이 초청강연을 맡은 연사의 요구에 따라 여학생들을 강제로 분리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에 따르면 파키스탄 페샤와르에 위치한 카이바르의학전문대학은 최근 전직 크리켓 선수이자 이슬람 설교자로 활동 중인 사이드 앤워(51)를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익명의 관계자는 앤워가 연단에 오르기 전 여학생들을 따로 앉히라고 요구했고, 학교 측은 야외 무대 담장 밖으로 여학생들을 몰아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여학생들은 담장 너머로 들리는 연사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했다.
SNS에 퍼진 당시 영상에는 울타리 뒤에 줄지어 앉은 여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학생은 “캠퍼스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애초 여학생 분리 조치를 요구한 연사가 비이성적이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러나 강연 당일 연사와 학교 측의 성차별적 요구에 항의한 사람은 없었으며, 대부분 침묵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의 전직 여성 하원의원 부샤르 고하르는 “여성의 참여를 제한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강연에서 앤워는 자신의 인생사와 이슬람 율법이 어떻게 자신을 우울증으로부터 구해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무장 경호원의 호위 속에 학교에 나타난 그는 “종교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말한 구원의 대상에 여성도 포함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동석하는 것을 범죄시한다. 올 3월 파키스탄 동부의 한 대학교에서는 남녀 합동 행사에 불만을 가진 남학생이 교수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기도 했다.
당시 파키스탄 에저턴대 영문과 학과장으로 정년퇴임을 4개월 앞두고 있었던 칼리드 하미드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학생들과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다 학생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교수를 살해한 카디브 후사인은 범행 직후 “혼성 행사는 이슬람에 반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다”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이 학생이 남녀가 함께 신입생 환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반이슬람적 행위라 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