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내 코로나19의 슈퍼 전파자로 알려진 91번 확진자를 향한 베트남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베트남항공의 파일럿으로 알려진 43살의 영국인은 지난 3월 14일 호치민 2군 타오디엔의 부다바에서 열린 대규모 파티에 참석했다. 슈퍼 전파자인 그를 통해 이곳에서만 1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잠잠했던 호치민 시내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2군 타오디엔은 한국 교민들이 대거 거주하는 지역으로 영국인 파일럿이 거주했던 아파트에도 상당수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자기 아파트 동 전체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폐쇄 조치에 많은 교민은 불편함과 더불어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민감한 시기에 술집에 모여 대규모 파티를 연 이들에 대한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한가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슈퍼 전파자인 영국인 파일럿을 향한 베트남인들의 반응이었다. 그의 몸 상태가 악화되면서 생명이 위태롭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응원이 쏟아졌다.
급기야 폐의 10%만 기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나의 폐를 떼어 주겠다”는 사람이 한둘 나타나더니 그 숫자가 70명을 넘어섰다. 현지 언론은 날마다 그의 상황을 알렸고, 베트남 전 국민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는커녕 그를 살리기 위한 국가적 사명이 만연한 분위기다.
아직 베트남에서는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이 영국인 파일럿이 그 첫 번째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망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 의식이 “살아 있는 나의 한쪽 폐를 떼어서라도 사망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집단행동을 끌어낸 것일까?
놀라운 점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폐 기능이 10%만 남아 있던 그가 최근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 폐 기능은 60%까지 회복했고, 8일에는 몸을 일으켜 앉아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두 달간의 의식불명 상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의식을 회복해 에크모 장치를 떼었다. 의료진에게 희미하게 보낸 미소에 전 국민이 환호했다.
“폐 이식만이 살길”이라던 의료진들도 이제는 폐 이식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게다가 병원 측은 그의 막대한 치료비 30억 동(한화 1억5540만원)을 보험회사에서 부담하도록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영국인의 회생은 베트남이 일군 ‘기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비록 베트남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도 있지만, 결과는 베트남 방역이 통했다는 것이다. 9일까지 베트남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332명(해외유입 환자 192명), 이 중 316명이 완치, 퇴원했으며, 사망자는 없다. 54일째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