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스카 호수 앞에 집을 짓고 정착한 에르난 산디노(73)는 바짝 말라버린 호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산디노는 “이젠 주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부인하는 사람도 호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남미 콜롬비아의 수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수에스카 호수가 바짝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으로도 지정돼 있는 이 호수엔 한때 철새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생명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산디노는 “완전히 물이 빠지지 않은 곳의 수심이 1m 정도에 불과하다”며 “거위 몇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을 뿐 호수를 찾던 철새들은 발걸음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부터 북부로 약 90㎞ 지점, 해발 2800m에 위치한 수에스카 호수는 5.4㎢ 규모로 수심은 한때 최고 6m에 달했던 곳이다. 호수에 설치된 플로팅 부두로 배가 드나들기도 했다. 콜롬비아는 지난 2006년 수에스카 호수를 수자원 및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수에스카 호수 주변에서의 가축 방목을 금지하는 한편 수자원 사용도 제한했다. 인위적으로 자연이 훼손되는 걸 최대한 막겠다는 취지로 내려진 보호조치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심술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특히 호수에 장난을 치는 건 변덕이 심한 강우량이다. 2009년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수에스카 호수의 수심은 역대 최저로 낮아지더니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바짝 마른 호수가 5~6m대 수심을 회복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기후변화의 장난이었다. 2010~2011년 라니냐 현상으로 강우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게 호수를 극적으로 되살린 결정적 이유였다.
이후 강우량은 해마다 줄기 시작하더니 결국 올해 호수는 다시 흉측하게 말라버렸다. 산디노는 “8년간 측정을 해본 결과 강우량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물이 증발하는 속도까지 빨라져 호수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환경 당국은 최근 지역 주민들과 호수 살리기를 위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기후변화에 있어 대책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지 언론은 “2009년 직전까지의 라니냐현상, 2015~2016년 역대 최악을 기록한 엘니뇨현상이 호수를 놓고 심술궂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격”이라고 보도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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