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무르는 이날 오전 파리에서 국제방위산업전시회 ‘밀리폴 파리 2021’ 참석 일정을 소화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급부상한 인물인 만큼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제무르를 에워싸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무르는 고정밀 저격 소총에 관심을 보였다. 안내에 따라 프랑스 경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소총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을 둘러싼 취재진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마치 경찰 흉내를 내듯 “웃지 말고 손 들어! 물러서!”라며 낄낄거렸다. 이어 저의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정치적 메시지도, 위협도 아니”라고 답하며 소총을 다시 전시대에 내려놓았다.
이후 현지에서는 제무르의 도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장전된 총은 아니었지만 무기는 항상 장전된 것처럼 취급해야 하며, 목표물이 아닌 대상에게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어겼다는 지적이었다. 마를렌 시아파 프랑스 내무부 시민권 담당 국무장관은 “재미없다, 끔찍하다. 언론 억압을 진지하게 언급한 제무르기에 더더욱 그렇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민주주의에서 언론 자유는 결코 위협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논설위원 출신인 제무르는 이 같은 시아파 장관의 질타에 “시아파는 얼간이”라면서 “기괴한 논란을 야기하려 애쓴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진하는공화국(LRM) 소속으로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휴그 렌슨 의원은 “전례 없는 일이다. 정치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서 제무르를 '어릿광대'에 빗대는 등 공세를 퍼부었다. 공화당 소속 중견 정치인 에리크 뵈르트 역시 “우리는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다. 미성숙한 태도”라고 핀잔했다.
언론인 출신 우익 인사 제무르는 정치인 경력도, 소속 정당도 없지만 지난 6일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마린 르펜 대표를 누르고 마크롱 대통령(24%)을 바짝 추격했다. 마크롱 대통령 대 르펜 대표 양강구도가 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여러 차례 기소된 전력이 있는 제무르는 프랑스가 느슨한 이민 정책과 무슬림 유입 때문에 수렁에 빠졌다는 주장으로 우익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2014년 출간된 그의 베스트셀러 ‘프랑스의 자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에서 제무르는 “68혁명의 가치가 만들어낸 이민자·동성애 문제가 프랑스를 망쳤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무르의 지지 기반은 확고하다. 프랑스인들이 정치와 사생활은 별개로 보는 편이긴 하나, 지난 달 불거진 불륜설에도 제무르의 지지 기반은 무너지지 않았다. 프랑스 한 주간지는 지난달 남프랑스 해변에서 20대 여성 보좌관과 밀회를 즐기는 제무르의 사진을 폭로했다. 제무르는 아내와 3명의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