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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앗아간 청춘, 나는 아직 반짝인다…홀로코스트 생존자 미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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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1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온의친구들박물관에서는 일명 ‘미스 홀로코스트 생존자’ 대회가 열렸다. 여느 미인대회와 달리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다./AFP연합뉴스
곱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할머니 10명이 무대에 섰다. 79세부터 90세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얼핏 ‘시니어 모델’ 선발 대회인가 싶었는데, 차례로 말문을 연 할머니들은 차마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겪으면서 이렇게 가족을 이루고 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1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온의친구들박물관에서는 일명 ‘미스 홀로코스트 생존자’ 대회가 열렸다. 여느 미인대회와 달리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다. 2009년부터 매년 열리던 대회는 2019년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가 어렵사리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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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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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대회에는 총 400명의 홀로코스트 생존 여성이 참가했으며, 10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개중에는 크로아티아 라브섬 강제수용소 생존자와 1941년 루마니아 이아시에서 발생한 유대인 집단 학살(포그롬) 생존자도 있었다. 심사위원으로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1992년 미스 이스라엘 우승자, 패션 디자이너, 모델, 사업가 등이 참여했다.


왕관은 루마니아 출신 홀로코스트 생존자 셀리나 스타인펠드(86)에게 돌아갔다. 스타인펠드는 루마니아에서 추방당해 임시수용소에 억류됐다가 1948년 이스라엘로 이주해 가정을 꾸렸다. 지금은 자녀 셋에 손자 7명, 증손자 21명까지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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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주최 측은 비록 전쟁에 청춘을 빼앗겼지만,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유대인 여성들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대회 창시자로 홀로코스트 생존자 지원 단체 ‘야드 에제르 르하베르’를 운영 중인 시몬 사바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우리 모두의 진정한 영웅이며, 그들 덕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세상이 어두울 때 인류를 밝히는 빛”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미인대회가 600만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2012년 대회 당시 홀로코스트 생존자 지원 대표기구 의장 콜레트 아비탈은 “아름다운 옷으로 가장한 일회성 행사가 생존자들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또 “화장품 회사의 값싼 마케팅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이용하는 끔찍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어머니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예루살렘 주민 라미 오스트롭스키도 “가증스럽고 어리석은 착취다. 배후에는 돈이 얽혀 있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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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적 행사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대회 창시자 사바그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다. 나치를 물리치고 이렇게 보란 듯이 잘살고 있다고 말하는 자리”라고 주장했다. 대회 탄생 배경에는 한 정신과 전문의 제안이 있었다면서, 생존자들의 삶에 대한 찬사가 대회 목적이라고 밝혔다.

사바그는 “과거 한 홀로코스트 생존 여성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바람에 학교 미인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정신과 전문의에게 털어놨다. 자신의 시간은 그때 그 어린 시절에 멈춰 있다더라. 미인대회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할머니도 18살 소녀 못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는 여성 다나 파포도 “끔찍한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상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600만 명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었다. 현재는 약 17만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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