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은 바미안 석불터를 관광 명소로 활용 중이다. 탈레반 대원은 하얀 탈레반 깃발이 나부끼는 석불터에서 일일이 손으로 쓴 입장권을 방문객에게 나눠준다. 5달러, 한화 약 6000원을 내면 53m, 38m 높이의 석불 한 쌍이 있던 자리를 돌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탈레반 지지자 시디크 울라도 바미안 석불터를 구경하기 위해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바미안까지 560㎞ 달렸다. 울라는 24일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장악 후 더 자유롭게 전국을 순회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석불이 파괴됐을 때 나는 7살이었다. 그때부터 바미안을 와보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석불이 파괴돼 기쁘다. 사실 폐허를 보러 왔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이었던 바미안 석불 유적지의 보존을 요구했다. 유네스코는 “바미안 석불 유적지 보존은 아프가니스탄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탈레반은 실제로 유적지 보존 준비를 끝마쳤다. 바미안 주지사 압둘라 사르하디는 “탈레반은 변화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지사는 “아프간에 평화와 안전이 있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면서 바미안 석불터 보존을 위해 과도정부와 협력 중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탈레반의 태도 변화에 대해 바미안 석불 연구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고고학자 레웰린 모건은 “바미안 석불이 외부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일부임을 탈레반도 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건 박사는 “탈레반은 지금 자신들을 건설적인 정부로 포장하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외 이미지 세탁을 꾀하는 탈레반에겐 바미안 석불터 보존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을 거란 설명이다.
하지만 바미안 석불터를 관광 명소로 만들려는 탈레반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바미안을 찾은 NBC뉴스는 탈레반의 야심과 달리 석불터에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석불이 있던 자리는 텅 비었고, 인근 동굴은 주민 차지가 됐다며 탈레반의 보존 계획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