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경찰은 최근 신용카드 도용 혐의로 50대 남자를 체포했다. IP 추적 끝에 남자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남자가 보관하고 있던 공책을 유력한 증거로 압수했다.
32쪽 분량의 공책에는 남자가 손으로 기록한 신용카드 번호의 비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경찰은 "해커가 낀 조직이나 은행 내부공모자가 있는 조직의 소행으로 추정했지만 평범한 남자의 단독 범행이었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쇠고랑을 찬 남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마탄사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는 페르난도 알베르토 팔세티(56). 그는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타인의 신용카드를 도용했다. 남의 신용카드를 도용해 자신의 선불카드에 돈을 입금하거나 인터넷에서 서비스나 상품을 구입한 뒤 되파는 식이었다.
신용카드 도용 횟수는 무려 169회, 이를 통해 취한 금전적 이익은 약 100만 페소(약 1050만원)에 이른다.
남자는 타인의 신용카드 정보를 엿보거나 해커에게 불법으로 정보를 구입한 적이 없다. 남자가 빈손으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뛰어난 지능 덕분이었다.
남자는 스스로 신용카드 번호의 비밀, 즉 알고리즘을 풀어냈다. 모 은행이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번호를 부여하는 공식을 혼자 알아낸 것.
경찰이 압수한 공책엔 그가 풀어낸 공식이 손글씨로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2와 ○2는 ○○○회마다 반복됨" "○○○○를 더한 후 ~" 이런 식으로 적힌 공식을 이용해 남자는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신용카드 번호와 보안코드(CVC)를 알아냈다. 남자는 스스로 깨우친(?) 공식을 적용해 신용카드 마지막 네 자릿수 번호로 보안코드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남자는 이렇게 얻은 정보로 인터넷에서 타인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해외사이트에선 신용카드 번호와 CVC 코드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하다. 남자는 170번 가까이 카드 도용 범죄를 저질렀지만 소액 결제를 하다 보니 피해자 중에는 누군가 자신의 신용카드를 도용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에 따르면 최초의 신고자는 한 케이블방송 업체였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8개월 수사 끝에 최근에야 범인을 검거했다.
수사 관계자는 "남자가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머리로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풀어냈다"면서 "범죄자지만 그의 지적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고 말했다.
검찰은 남자를 신용카드 도용,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